알의 묵은 껍질을 깨라
알의 묵은 껍질을 깨라
  • 김진웅 선문대학교 언론광고학부 교수
  • 승인 2012.12.21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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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웅 선문대학교 언론광고학부 교수

최근 사회적 이슈 중의 하나인 이른바 ‘성(性)검사 사건’의 추이를 보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사건도 사건이지만, 이를 조사 처리하는 사법기관의 태도도 우리를 놀라게 한다.

어쩌면 우리사회 내 지배집단의 잠재적 병폐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기도 하다. 또 다른 사회 부문에서 드러나지 않고 자행되는 문제점들은 얼마나 많을까.

반값등록금으로 주목의 대상이 된 대학의 부조리들도 개선되어야 한다. 이를테면 학위논문심사과정에서 벌어지는 ‘접대문화’도 일소되어야 할 문제이다.

최근 박사학위논문이 통과된 한 지인은 심사위원들에게 수십만 원을 담은 봉투를 돌리고 호텔에서 식사대접 하는데 수백만 원이 들었다고 한다.

이른바 박사가 되기 위한 한국적 통과의례인 셈이다(물론 모든 경우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이렇듯 물적 관계가 스며들 경우, 진정한 정신적 사제관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벌써 오래전 일이지만 필자의 경험은 이와는 대조적이다. 독일에서 박사논문이 끝난 후 지도교수에게 식사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웃으면서 자네가 논문 쓰느라 고생했으니 오히려 자신이 나를 초대해야 한단다. 결국 식사대접 한번 못한 채 귀국하였다.

지도교수는 독일어로 ‘독토화터(Doktorvater)’라고 불리는데, ‘vater’는 아버지라는 뜻이다. 부자관계처럼 엄격한 도제식으로 이루어지는 사제관계는 지식의 전수 뿐 만 아니라, 인격을 전수하는 의미를 상징한다. 벌써 고인이 되었지만 그의 학식 뿐 아니라 높은 인품은 늘 나의 사표(師表)가 되고 있다.

이러한 사례의 차이는 외부로부터의 법적 규제 장치에 의해 비롯되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제도차원에서 구성원 스스로의 윤리의식 및 자정능력이 더 중요하다. 이를 통해서 진정한 내적 민주화가 이루어진다.

민주! 즉 국민이 사회의, 나라의 참된 주인이 되려면 각자 자기 자신, 그리고 자신이 속한 조직이나 환경의 지속적인 변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개인적 차원보다는 사회적 차원에서의 변화가 더 중요하다.

외부인은 알지 못하는 숨은 부조리들이 사라져야 한다.  흔히 언론을 통해 알려지는 정보들이 일반 국민에게는 새로운 소식(News) 이지만, 자기집단의 구성원이 볼 때는 이미 널리 알려진 ‘올드 뉴스’인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사회를 주도하는 전문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올드 뉴스거리는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들의 개선이 민주주의를 향한 구체적 실천방안이다.

이제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대통령선거도 끝났다. 국가의 중대한 대사였다는 점도 그러하지만, 매스미디어가 전하는 포퓰리즘적 뉴스가 연일 국민의 눈과 귀를 자극했기에 한편으로는 허탈한 느낌마저 든다.

마치 월드컵 결승전을 관람한 직후처럼. 매스미디어는 또 다른 뉴스나 정보를 발굴해서 계속 확산시키는 것이 본업이지만, 국민들은 이제 자신의 일상을 성찰할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새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모든 것을 변하게 할 수는 없다. 대통령과 국민의 관계는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연속적이어야 한다.

즉 투표행위의 한 순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민과 지도자 사이는 이른바 줄탁동시(啐啄同時)가 필요하다. 병아리가 안에서 알을 깨고(啐), 밖에서 어미닭이 껍질을 쪼는(啄) 노력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새 세상이 열린다. 각자 자신이 몸담고 있는 알의 묵은 껍질을 깨는 노력이 내적 민주화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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