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학교에 대화가 필요하다
이젠 학교에 대화가 필요하다
  • 성기선 가톨릭대 교육학과 교수
  • 승인 2012.12.28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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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없이 직진, 3시간째’, ‘초보운전’. 아침 출근길에 본 문구이다. 앞 차의 뒷 유리에 써 놓은 글귀였는데,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해 주었다. 앞만 보고 직진을 계속하고 있는 그 자동차는 어디를 향해서 가는 걸까, 열심히 달려간다고 목적지에 잘 도착할 수 있을까?

문득 우리도 초보운전자가 운전하는 자동차를 타고 앞만 보고 달리고 있지는 않은가, 그럼으로 인해 나타나는 여러 문제를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대선이 끝나고 승자와 패자의 환호와 탄식이 여러 곳에서 들린다.

이제는 앞만 보고 달려서는 안 되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다양한 이념과 가치를 갖고 있는 다원화 사회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제에 옆을 쳐다 보는 여유를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교육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생각해 볼 수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청소년 자살률, 이 하나만 가지고도 엄청난 사회적 문제가 되고 또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온 사회가 합심해서 노력해도 부족할 형편인데도 불구하고 이제 많은 사람들이 무감각해져 가고 있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각종 폭력, 왕따 등에 대한 적극적 해결방안 탐색이 필요하다.
사실 이러한 문제는 무관심, 직진, 획일성, 성적, 출세 등으로부터 비롯된다. 오로지 하나의 잣대로만 학생을 평가하고, 하나의 시험만으로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고, 획일적 통제로 숨통을 죄는 교육,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 없이는 우리의 학교는 자기자리를 찾기 어렵다고 본다.

몇 년 전에 ‘나도 물고기처럼 자유롭고 싶다’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초등학생이 있었다. 과도한 학습노동에 시달리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서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안타까운 사례는 이후에도 수업이 반복되고 있다.

유엔아동인권위원회에서는 우리 사회가 과도한 학습노동으로 아동의 기본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을 한 바 있다. 학생인권, 아동인권, 청소년인권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아동, 청소년들이 자신들이 부여받은 기본적인 행복추구권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을 이 사회는 제공해야 한다. 그것은 아주 기초적인 삶의 기반이며, 교육의 출발점이다. 이러한 진리를 망각하게 되면 비정상적 문제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으며, 생명이 존중되는 문화를 만들어 나갈 수 없다. 

학교가 바르게 되기 위해서는 학교 내에서 일어나는 인간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도록 해야 한다. 소위 ‘사회적 자본’이 풍부한 학교는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수준도 향상되고, 탈락률이나 비행도 줄어든다는 연구들이 소개된 바 있다. 사회적 자본이란 다름이 아니라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 간의 유대감, 연대의식, 소통을 의미한다.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외롭게 지내는 아이가 학교에 가서도 친구와 교사로부터 외면 받는다면 그 아이는 어디에서 자신이 인정받는다는 생각을 하게 될까?

학교가 따뜻한 공감을 주는 공간이 아닌 차갑고 살벌한 경쟁의 공간으로 느껴진다면 이 아이는 성공적인 학교생활,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까? 반면에 학교에 오면 반겨주는 선생님이 있고, 고민을 들어줄 친구가 있고, 서로 소통하는 즐거움이 있다면 이 아이들에게 학교는 정말 의미 있는 성장의 공간이 될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자본이 풍부한 학교에서는 폭력과 비행, 인간소외 현상이 쉽게 발견될 수가 없다.

이제 우리 아이들이 성적 경쟁에만 몰두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의 다양성에 대해서 토론하고, 친구의 고민을 들어주고, 자신의 고민을 성찰할 수 있도록 옆과 뒤를 돌아볼 수 있는 교육에 참여하도록 해 주어야 한다.

교육은 대화이다. 자신과의 대화, 친구와의 대화, 세계와의 대화이다. 획일적인 강의식 수업만 진행되고, 지식의 결과만을 암기하고, 시험에 나올 문제만 푸는 교육을 진행해 나간다면 이러한 대화가 끼여 들 틈이 없다.

교육에 보수와 진보가 있을 수 없다. 이러한 교육패러다임의 전환에 찬반이 있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답답한 학교교육의 관행과 문제점을 슬기롭게 해결해 나가야 하는가라는 방법을 함께 찾아나가도록 해야 한다.

새롭게 들어서는 정부는 교육문제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학생들이 진정으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교육을 찾기 위한 노력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적어도 새해부터는 청소년 자살률을 제로화시키고, 학생들이 유의미한 대화를 학교에서 많이 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들을 적극 추진해서 우리의 미래들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만 할 것이다.

교육에 대해서는 더 이상 ‘거침없이 직진’은 곤란하다. 우리 교육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진단과 해결책 마련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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