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김주대
봄날- 김주대
  • 박성우 시인·우석대교수
  • 승인 2012.12.28 11: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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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입구, 뭉텅 잘려나간 하반신을 시커먼 고무 튜브로 감싼 채 자벌레처럼 기어오던 사내가 등산객들의 다리를 붙잡았다. 몇 사람이 바구니에 동전을 던지고 거머리를 떼어내듯 지나쳤다. 붙잡은 손을 뿌리치지 못한 여고생이 엉거주춤 서자 사내는 배밀이로 밀고 온 납작 바퀴 음악통 밑에서 휴대폰을 꺼내 무 무 문자 하 한번, 이라고 했다. 왜 삐뚤삐뚤 눌러쓴 글씨의 구겨진 종이를 여고생에게 내밀었다. 나 혼 자 북 한 산 에 서 조 은 구 경 하 니 미 얀 하 오 지 배 만 이 써 려 니 답 답 하 지 ? 지 배 가 면 우 리 가 치 놀 로 가 오 사 랑 하 오. 사내는 서늘한 눈매의 여자 사진이 붙은 예쁜 열쇠고리를 마구 흔들어 보이며 연방 누른 이의 웃음을 웃었다. 여고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문자를 찍어주고 있었다. 북한산 입구, 봄날이었다.

* 이 시는 ‘주정선의 주막’이라는 인터넷 블로그의 글을 변용한 것임을 밝힌다.

■ 작품출처 : 김주대(1965~      ),  시집『그리움의 넓이』

■ 어때요. 굳었던 얼굴이 방긋, 환해지지요?  오늘은 부러, 마음이 좀 따뜻해지는 시를 골라봤습니다. 우린 지금 너나할 것 없이 몸도 맘도 시린 계절을 건너가고 있으니까요. “지 배 가 면 우 리 가 치 놀 로 가 오 사 랑 하 오.”라고 여고생이 대신 보내주는 문자가 맘 추운 이들에게 전달될지도 모르니까요.
꼭 봄날이 아니어도 ‘봄날’은 오겠지요. 제아무리 세상이 추워져 와도 마음 따뜻하면 봄날이겠지요. 몸이 떨려 와도 마음 포근하면 봄날이겠지요. 그간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리며 저는 이쯤해서 총총 물러날까합니다. 언제나 봄날 되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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