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최저 시급 알바의 기록
법정 최저 시급 알바의 기록
  • 천가영 취업준비생
  • 승인 2013.01.11 11: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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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늦여름부터 시작한 아르바이트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앞치마를 하고 카운터에 서서 포스를 두드리며 신입과 이것저것 의사소통을 시도한다. 내 고등학교 후배네. 언니라고 불러.

일주일 중 매출이 제일 적은 일요일인데도 불구하고,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졌다는 뉴스의 호들갑에도 불구하고, 손님이 꾸역꾸역 밀려온다. 게다가 오늘따라 주방에서 빵을 미친 듯이 구워낸다.

이러다가 진짜 빵 홍수 나겠다. 손님과 빵이 뒤섞여서 넘쳐나고 등 뒤에는 신입이 뭘 해야 할지 몰라 멀뚱히 서있다. 좌우로는 실장님이 쿠키 백 몇 십 개를 포장한다고 사납게 왔다 갔다 하는 암사자처럼 내 움직임을 가로막는다.

그 와중에 전화 온 손님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한참을 되묻다가 손님이 밀려있어서 나중에 다시 전화 드리겠다고 말하는 내 목소리에는 숨길 수도 자제할 수도 없는 짜증이 담긴다. 아. 이런 상황은 진짜 평범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짜증이 눈썹 위까지 치솟을 거라고 장담한다.

그 와중에 사장님이 내게 한차례 으르렁거린다. 낮은 지위의 사람이 타인을 배려하는 것은 그 사람 입장에서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결코 자랑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높은 지위가 되었을 때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여전히 유지할 수 있느냐다.
사람은 지위나 권력을 가지게 되면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게 되는데, 그 이유는 그럴 필요도 없을뿐더러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은 굉장한 정신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이다. 사장을 볼 때마다 늘 생각한다. 진짜 오너의 자질이 없는 사람이라고.

그러나 사람들과 이야기하다보면 오너의 자질을 갖춘 오너는 거의 없다고 봐야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대부분의 오너들은 자신의 아랫사람들에게 오징어 안주처럼 영원히 씹히는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나도 알긴 안다. 아무리 인간 대 인간으로서 좋은 사람도 상사가 되면 결코 그 호감이 유지되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아르바이트를 통해 88만 원세대라는 용어에 깊이 공감하며 이 세태에 대한 분노를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힘든 일을 최소한의 인력으로 어떻게든 혼자서 알아서 감당하고 처리하라고 떠맡겨버리고 그 이윤은 모조리 업자에게 돌아가는, 감당 못하고 처리 못하면 그 잘못은 사람과 자원을 합리적으로 쓰지 않은 업자의 잘못이 아니라 피고용자의 잘못인 시스템.

억울하면 갑이 되라는 말이 이런 뜻이었구나 싶다. 그러나 내가 갑이 된다고 해서 상대방이 을이 되는 게 아니라 양쪽 다 윈-윈 할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을 나는 구축하고 싶다.

바꿀 수 없는 현실이라고 해서 ‘당연하다’는 것은 다수의 폭력이고 세상의 강압이다. 나는 기계가 아닌 이상 모든 일에는 변수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다양한 길이 있다는 것을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는 중이니까 일단은 이대로 괜찮지 않을까 하는 심정이다.

최저시급 카운터 알바는 꽤 오랫동안 내 마음에 상처와 앙금으로 남아있을 것이고 또한 훈장과 같은 경험이 될 것이지만, 세상은 살아가면서 꼭 힐링이 필요한 장소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하대 받고 모욕 받고 억울한 취급을 받더라도 내가 나답게 존재하는 것. 그것이 내겐 이번 알바에서 주어진 가장 큰 과제였다.

니체는 역설했다. 인간은 정원사처럼 자신의 곤경을 돌보아야 한다고. 식물의 잠재력을 믿는 정원사처럼. 삶에서도 식물의 뿌리에 해당하는 수준에서는 여러 어려운 감정과 상황에 처할 수 있지만, 그런 것들은 사려 깊은 재배를 통하여 더없이 위대한 업적과 환희로 결실을 맺을 수도 있다고.

훌륭하고 존경받는 것들은 그와는 분명히 정반대인 사악한 것들과 교묘하게 얽혀 있고, 사슬로 꿰어져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자신이 처한 곤경에 당혹감을 느낄 것이 아니라 그 곤경으로부터 아름다운 무엇인가를 일구지 못하는 사실에 당혹해야 한다고 말한 이 철학책이 마치 자석처럼 도서관 수 천 권의 장서 중 내 손에 이끌려온 것은 참으로 내게 필요한, 친절한 안배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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