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울 수 없는 화염의 현장… 서울 재개발 지역 주민 고통 현재진행형
지울 수 없는 화염의 현장… 서울 재개발 지역 주민 고통 현재진행형
  • 이인우 기자
  • 승인 2013.01.18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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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세입자만 기소, 청와대·경찰청 전방위적 여론조작 나서 피해자 압박

2009년 1월 20일 오전, 용산구 한강로 2가 GS빌딩(옛 국제빌딩) 인근 버스증앙차로 정류소에서 인도로 건너가는 횡단보도는 전투경찰에 의해 차단됐다. 시민들은 한참을 걸어 다른 횡단보도로 건너가야 했다.

그날 아침 횡단보도와 잇닿은 골목 안쪽 남일당 건물에서 경찰특공대의 진압작전 도중 철거민 시위자 5명과 경찰 1명이 불에 타 숨지는 참사가 벌어졌다. 경찰은 남일당으로 들어가는 길을 완전히 차단, 시민들의 접근을 막았다.

옥상에서, 법정에서 희생된 세입자들

남일당은 용산4구역 재개발지역에 포함, 철거를 앞두고 있었다. 대책 없이 쫓겨날 위기에 처한 세입자들은 전국철거민연합회(전철연)와 함께 남일당 옥상을 점거, 농성을 벌였고 용역직원을 앞세운 경찰과 격렬한 충돌을 벌였다.


당시 소방당국은 화재 위험을 경고했으나 경찰은 특공대를 동원, 크레인에 대원들이 타고 있는 컨테이너박스를 달아 옥상 진압에 나섰다.

결국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 순식간에 철거민과 경찰특공대가 숨지는 참사가 벌어졌다. 당시 사망자 외에 23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이후 검찰의 수사가 진행됐으나 경찰 내부의 홍보 지침, 왜곡 시도 등에 대한 논란이 빚어졌다.

수사는 사고당시의 폭력 문제, 용역 직원, 안전 대책, 과잉 진압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파헤쳐야 했으나 검찰은 2월 9일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경찰에 형사책임을 전혀 묻지 않고 점거농성을 벌인 농성자 20명(5명 구속, 15명 불구속)과 불법행위를 저지른 용역업체 직원 7명 등 27명을 기소했다.

이후 재판과정에서도 변호인단이 요구한 국민참여재판 신청이 기각됐고 검찰의 수사기록 열람, 등사도 거부됐다. 변호인단은 이에 변론을 하지 않겠다며 퇴장했고 재판부는 국선변호인에게 변론을 맡긴 뒤 재판을 진행했다.

기소된 철거민 9명은 이에 반발, 재판부 기피 신청을 냈으나 법원은 열람, 등사가 이뤄질 때까지 공판절차를 중지시키지 않는다고 재판부가 불공평한 재판을 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라며 신청을 기각했다.

‘군포연쇄살인사건’ 수사내용 홍보하라

한편 당시 이성호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 행정관은 경찰청 홍보담당관에게 용산 참사를 무마시키기 위해 경기 서남부 지역 연쇄 살인 사건을 적극 활용하라는 이메일을 보내 파문을 일으켰다. 김유정 민주당 의원이 이 사실을 폭로하자 경찰과 청와대 모두 부인했으나 결국 사실로 밝혀졌고 청와대측은 이를 개인적인 행동이라고 발표했다.

이성호는 2월 6일 경찰청에 보내는 이메일에서 “용산사태를 통해 촛불시위를 확산하려고 하는 반정부단체에 대응하기 위해 ‘군포연쇄살인사건’의 수사내용을 더 적극적으로 홍보하기 바랍니다. … 예를 들면 ▲연쇄살인 사건 담당 형사 인터뷰 ▲증거물 사진 등 추가정보 공개 ▲드라마 CSI와 경찰청 과학수사팀의 비교 … 용산 참사로 빚어진 경찰의 부정적 프레임을 연쇄살인사건 해결이라는 긍정적 프레임으로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라고 사실상 지시를 내렸다.
▲ 14일 오전 서울 용산구 남일당 터에서 용산참사 4주기 범국민추모위원회 관계자들이 용산참사 4주기 범국민추모주간 선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에 앞서 경찰청은 1월 28일 지방경찰청 등으로 사건관련 여론조사에 참여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광주경찰청은 산하 경찰서 직원들에게 ‘용산 사건 관련 인터넷 여론조사 적극 참여 요망: MBC 100분 토론 시청자 투표’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 여론조작이라는 비난이 일었다.

서울시 강제철거 승인이 단초

용산참사는 서울시가 도시정비사업으로 용산4구역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면서 삼성물산, 대림산업, 포스코건설을 시공업체로 지정, 강제철거 등의 작업계획을 승인하면서 비롯됐다.
▲ 14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열린 '용산참사 4주기 추모미사'에서 참석자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사진 뉴시스]

용산4구역 재개발 사업은 한강로3가 63∼70번지 일대 5만 3442m²를 도시환경정비 차원에서 재개발하는 사업으로 40층 규모 주상복합 아파트 6개동(493가구, 평형은 164∼312㎡)이 들어설 예정이었다.

서울시와 용산구는 토지보상법에 규정된 주거이전비가 너무 적다며 반발해 시위를 해온 세입자들(약 100여 명)을 강제로 철수시키는 과정에서 물의를 일으켰고 결국 참사로 이어졌다.

또 당시 용산4구역은 재개발조합 측이 세입자에게 법적으로 규정된 휴업보상비 3개월분과 주거이전비 4개월분을 지급한다는 입장을 고집한 반면, 남일당 세입자 등은 조합이 주는 보상비로는 생계와 주거를 이어갈 수 없다며 반발했다.
 
사건 발생 전까지 세입자 890명 중 85.7%(763명)의 보상과 철거(80%)도 이뤄졌으나 일부 상인과 주택 세입자 중 100여 명이 2007년부터 이에 반발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러한 재개발을 둘러싼 조합과 세입자의 갈등은 용산뿐만 아니라 서울 각 지역에서 현재도 진행 중이다. 따라서 용산참사는 4주년을 맞는 지금까지도 현재진행형이다.

                                             [용산참사 일지]

2009년 1월 20일

경찰 철거민 강제진압 과정에서 화재 발생, 철거민 5명ㆍ경찰 1명 사망

2009년 1월 28일

병원에 있던 철거민대책위원회 이충연 위원장 구속

2009년 2월 9일

검찰 사건 수사결과 발표. 경찰은 무혐의로 결론. 철거민 20명ㆍ용역업체 직원 7명 등 27명 기소

2009년 2월 11일

청와대, 연쇄살인사건으로 용산참사 여론 무마하라는 홍보지침 이메일 발송 드러남

2009년 3월 26일

용산사건 국민참여재판 신청 기각

2009년 4월 22일

용산사건 검찰수사기록 요청에 검찰 불응. 재판부도 수사기록 압수신청 기각

2009년 6월 1일

변호인단, 수사기록 압수신청 거부한 재판부에 대해 기피신청냈으나 기각

2009년 10월 3일

정운찬 총리 용산참사 현장 방문

2009년 10월 28일

서울중앙지법, 망루 생존 철거민 전원 유죄 판결

2009년 12월 30일

희생자 장례절차 등 협상 타결

2010년 1월 5일

용산참사 범국민대책위원회 발족

2010년 1월 9일

철거민 희생자 5명 범국민장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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