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길거리 벤치가 가지는 의미
서울의 길거리 벤치가 가지는 의미
  • 박진혁 서울타임스 객원기자
  • 승인 2013.01.18 14: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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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오랜 기간 살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특히 요즘 공감할 부분이 한 가지 있다.
길을 걷다가 잠시 쉴 수 있는 공간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넘겨버리는 동안 서울 거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던 공공 벤치는 이제 일부러 찾지 않으면 구경하기도 쉽지 않을 정도로 귀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별것 아닌 듯 보이는 길거리의 벤치는 그 길만의 특색 있는 공간이 되어 산책을 나온 노부부가 손잡고 추억을 나누는 장소가 되어주기도 했고, 어린 연인들에게는 풋풋한 첫 키스의 장소가 되기도 했으며 조금만 걸어도 쉽게 지치는 임산부나 노약자에겐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소중한 중간 지점이 되어 주었다.

그뿐인가 예술가들에게는 공연의 무대가 되어주기도 하고, 심지어 날이 따뜻한 계절에는 노숙인들의 집이요 침대 역할까지 하던 “누군가의 공간”이었다.

이유가 궁금했다. 서울 시민이 이토록 멸종에 가까울 정도로 길거리에 있던 벤치를 없애주기를 원한 적이 있었던가? 아니, 서울의 주인이라는 시민에게 제대로 의견을 물어본 적은 있었을까? 그 정도로 중요하지 않은 사소한 일이었을까?

짐작키로 오로지 경제적인 논리에 따른 철학의 부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벤치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길을 걷다 잠시 쉬고 싶다면 돈을 내고 커피숍에 들어가 장소 값을 치르는 것이 마땅할 테니까.

그런 논리로 바라보면 서울시의 모든 거리의 벤치와 그 주변의 자판기 등은 내수시장 내지는 경제성장의 걸림돌인 셈이다. 덕분에 이제 많은 서울시민은 잠시 지인들과 담소를 나누기 위해서도 반드시 비싼 커피숍에 들어가 상대적으로 가장 저렴한 아메리카노를 마셔야 한다.

서울의 길거리에 벤치 좀 없어진 것을 어째서 상인들의 이기주의와 경제적 효율만을 쫓는 공공 행정의 문제로까지 관련시키나 하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요즘 SSM과 재래시장 문제 등으로 불거진 사회의 주요문제 중 하나가 바로 상생이다. 형편이 어려워 길에서 풀빵장사를 하려고 해도 당장 먹고 죽을 돈 한 푼 없는 상황은 개인의 사정일 뿐, 디자인을 생각한 노점박스를 살 수 없다면 시작조차 하기 쉽지 않은 게 엄연한 현실에서 공공장소에 대한 철학적인 생각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창업에 관해 이야기했으니 단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나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같은 창업자들을 한 번 생각해 보자. 그들도 지금 한국의 젊은이들처럼 처음엔 무엇인가를 시작하고 싶은 공간이 필요했지만, 너무 비싼 장소를 돈으로 살 수 없어 결국 차고와 집 앞의 잔디마당을 이용했다고 한다.

공공장소에서 친구들과 함께 거리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제품에 대한 시연과 조사를 하기도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화가 아닌가.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있어도 값비싼 공간 때문에 시작할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지원과 제도가 턱없이 모자란 이런 상황을 놓고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에게 거리의 벤치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묻는다면 그들은 뭐라고 대답할지 참으로 궁금한 이유다.

물론 상권 보호의 측면에서 노점상인과 벤치, 자판기를 상업적, 법률적인 관점에서만 따진다면 그 역할에 한계나 문제점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분명 우리는 다양한 의미로 거리의 벤치, 나아가서는 공공장소로 대표되는 공간들이 분명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공간이었다는 점을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어릴 적 동네 어귀에 있는 평상에 앉아 모시옷에 부채를 쥐고 장기나 바둑을 두면서 담소를 나누시는 어르신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덕분에 얼마든지 해 질 무렵까지 또래 친구들끼리 맘 놓고 뛰어놀 수 있었고 옆집 밥상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동네 구성원에게 어떤 대소사가 있는지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동네의 공공장소인 평상에 앉아 두런두런 나누시는 이야기들은 노인이라고 소외당할 일이 없도록 해주었고 요즘처럼 아파트 옆 호수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살다 혼자서 고독하게 죽음을 맞이하거나 거리에서 뛰놀면 유괴를 당할지 모르니 밖에서 뛰어놀지 못하도록 해 학원이 아니면 아이들이 친구를 만날 기회조차 없는 일이 일어나지도 않았다.

기술의 발달과 현대화는 자연스럽게 이어져 내려오던 평상을 대신해서 그러한 역할을 CCTV가 대신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과연 그러한가.

이처럼 공공장소 제공의 의미를 조금만 달리 생각해보면 매우 중요하고도 다양한 가능성과 창조적인 의미들로 치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서울의 길거리 벤치’가 가지는 의미를 다시금 짚어볼 때가 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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