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를 회수합니다’
‘이력서를 회수합니다’
  • 김원진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3학년
  • 승인 2013.01.25 13: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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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벌 궁리에 한창이다.
학교에서 행정조교로 일을 시작했지만 용돈벌이에 다소 부족함이 있다. 개학하면 시간이 맞지 않아 계속 할 수도 없다.

얼마 전, 상대적으로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를 구했는데 그것마저 울며 겨자 먹기로 포기했다. 별 생각 없이 인턴을 지원 했고, 덜컥 1차 서류 전형을 통과해 하는 수 없이 다른 이에게 그 꿀 같은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었다.

더 약이 오르는 건 2차 면접에선 고배를 마신, 눈앞에 놓인 씁쓸한 현실 때문이리라. 이제 계절학기도 끝났겠다 잠시 미뤄뒀던 구직을 시작했다.

틈만 나면 학교 취업지원팀의 아르바이트 공고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알바천국이니 알바몬이니 하는 구인 웹사이트를 틈틈이 챙겨보기도 한다.

처음으로 내 레이더망에 포착된 건 신생 PR대행사였다. 주 5일, 신문 모니터링을 하면 용돈벌이는 할 수 있을 만큼의 돈이 지급된다고 구인 공고에는 쓰여 있었다.

지원했던 인턴면접 때문에 이틀정도 망설이고 일단 지원서를 보냈다. 깜깜무소식이었다. 이미 늦었구나 싶어 담당자에게 다시 메일을 보냈다. “이미 모집이 끝나서 연락을 안 주시는 거죠?” 여전히 답장은 없었다.

며칠 전에는 도서관 관련 아르바이트 공고가 떴다. 게다가 재택근무였다. 정확히 하는 일이 적혀 있지 않아 꺼림칙했지만 급한 마음에 일단 지원서부터 디밀고 봤다.

책을 좋아하고 평상시 도서관을 가까이하면 큰 무리는 없을 거라는 말에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혹시나 싶어 포털 사이트에 검색을 해봤다. 어느 학생의 제보에 따르면 내가 지원한 단체는 일종의 이익단체이나 유령단체였다. 이 단체는 학생들에게 단체에서 알려주는 책을 신청하도록 하고, 성공하면 건당 수당을 지급했다.

이미 몇몇 학교에서는 문제가 되어 경고조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재빨리 지원취소 버튼을 눌렀다.
멘붕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위 단체에 지원하려고 구직 사이트에 이력서를 등록하고 몇 가지 개인정보를 공개했다.

그랬더니 이름도 듣도 보도 못한 마케팅회사가 잽싸게 개인정보를 열람한 게 아닌가! 그것도 속속들이. 안 되겠다 싶어 다시 이력서 정보를 모두 비공개를 전환해버렸다.  

이후에도 몇 군데 더 이력서를 넣었다. 논술학원 첨삭 전담 강사라든지 중등국어 파트타임 자리를 시간과 장소만 맞으면 일단 써봤지만 반응은 언제나 묵묵부답이었다. 처음에는 누가 봐도 좋은 자리는 이미 다른 누군가의 차지려니 하고 위안을 삼았다.  

다만 왠지 모를 불편함을 지울 수 없었다. 아무리 많은 수의 학생들이 지원했다한들, 일단 안 됐으면 안 됐다고 통보는 해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나아가 주민번호와 같이 중요하지 않은 정보는 왜 요구하는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혹시 음지로 내 개인정보가 팔려나간 건 아닌지 걱정도 들었다. 그저 힘없는 ‘을’이었다. 

나는 세상 물정을 몰랐다. 부모님이 물어다 준 과외로 지금까지 경제생활을 손쉽게 해온 탓이다. 알바생 시급이 최저임금에 못 미친다고 하자 “처음 대하는 사람에게 최저임금부터 거론하는 건 예의가 아니구나”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 어떤 사장님.

신촌에서 동대문까지 심부름시키면서 차비 줄 생각일랑 없는 내 옆자리 모 선생님. 심지어 점심시간을 지나 연장근무를 시키면서도 점심값 같은 건 안중에도 없다. 이런 현실을 이제야 몸으로 느낀다.  동생에게 사연을 늘어놓았더니 되레 나에게 면박을 준다.

원래 그런 거라고. 세세히 다 챙겨주는 사장이나 고용주가 어딨냐고. 그런 거 싫으면 그냥 배 따뜻한 과외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알바 경험이 많은 동생이 나에게 현실적인 충고를 건넸다.

위로를 받고 싶어 동기에게도 내 이력서가 벌써 중국 후미진 마을에서 굴러다는 거 아니냐고 하소연 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매한가지였다.

“어쩌겠어, 우리는 아직 ‘을’일 뿐인데. 내라면 내는 거고, 적으라면 적는 거지.” 그 놈의 돈을 위해 정신없이 흩뿌린, 애꿎은 이력서에게 미안함 마음만 든다. 이불속에서라도 외쳐야겠다.

“저기요! 이력서를 회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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