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과 불행은 표리일체
행복과 불행은 표리일체
  • 천가영 취업준비생
  • 승인 2013.02.14 17: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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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서실 근처에서 닭강정집을 발견했다. 

먹을 곳이라고는 없는 고립된 섬과 같은 이 근처에 닭강정집이 있었다니! 난 감사한 마음으로 저녁으로 먹으려고 가게를 방문했다. 볼이 청소년처럼 트러블로 울긋불긋한 총각이 모자를 눈까지 가린 채 나를 맞았다. 
 
닭 튀기는 소리에 섞여 목소리가 잘 들리지도 않는데 설명도 제대로 해주지 않아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겼다. 그냥 2000원짜리 큰 컵닭을 달랬더니 콜라 닭강정을 주지를 않나, 그거 아니라고 큰 컵닭 달랬더니 나중에 계산할 때 2000원을 내밀었는데 자기가 포장한 게 3000원짜리란다.
 
장사할 마음이 없어보였다. 
뒤늦게 창고에서 돌아오신 어머니로 보이는 아주머니는 목소리도 작고 몸짓도 표정도 힘없어보였다. 숱 없는 머리를 두건으로 묶어 가리신 채 내게서 3000원을 받으시는 손은 손가락마다 손톱에 보라색 멍이 봉숭아물처럼 들어있었다. 
 
아무리 봐도 모자지간으로 보이는데, 목도 안 좋은 곳에 가게 선택도 잘못한 것 같고 손님 대하는 걸 봐서는 장사체질도 아닌 듯 싶어보였다.
 
먹고 살 일자리도 없고 아들도 취직도 안되고 장사라도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돈을 끌어 모아 개점한 느낌이었다. 입안이 씁쓸했다. 맛이라도 있으면 자주 찾아가야겠다는 이상한 봉사정신이 고개를 들었다.
 
불친절과 주문오류와 병색만연하신 어머님이라는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이집의 닭강정 맛은 ‘안 팔리겠다, 이거 어쩌냐’였다. 유행지난 올드 스타일로 튀겨진 튀김옷은 어렴풋이 카레 맛이 났고 핫 스파이스를 노린 건지 군데군데 마른 홍고추가루가 보이는, 엿을 녹인듯한 소스는 닭튀김에 스치듯이 발려있었다. 
 
난 미식가가 아니다. 미식가라면 이런 건 안 먹겠지. 나는 미식가가 아니라 주면 먹긴 먹는데 말이 많은 사람이다. 그렇게 독서실 주인아저씨가 혼자 짜장면을 시켜먹어서 냄새가 진동하는 휴게실에서 꾸역꾸역 그 많은 닭을 먹었다. 찝찝한 서비스와 못마땅한 맛에 소화시키기가 힘들었다.
 
먹고 난 뒤 오늘 정한 공부분량을 끝내려고 분발하는데 시계가 열한시가 다 되어갔다. 이걸 집에까지 들고 가긴 싫어서, 집까지 일을 끌어들이기 싫어 어떻게든 얼른 일을 마치고 퇴근하려는 직장인의 그것과 비슷한 심정으로 초조한 마음에 머리카락을 잡아당겨가며 꾸역꾸역 책장을 넘겼다. 내 모발을 소중한데, 이렇게 밤만 되면 괴롭힘을 당한다.  
여러 가지로 스트레스가 맥스(max)상태가 되어 집에 왔다. 가족들은 이미 다 잠들어있다. 자정 언저리에 퇴근해서 불 꺼진 집에 들어가는 직장인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은 기분이다. 자기 전, 이번에 컴백한 걸 그룹의 타이틀곡 뮤직비디오를 찾으려고 유튜브 검색을 하다가 어느 외국인이 올린 의미심장한 링크를 발견했다. 
 
오?!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눌러봤다. 결과는? “What a new world!!" 나는 케이 팝 세계화의 반사적 이익을 이렇게 누리는구나 싶을 정도로 열심히 동영상을 다운로드했다. 내가 학창시절 영어를 배운 게 실생활에 유용할 때가 있다면 이런 경우겠지. 
 
북미 쪽 사람 같은데 케이팝 마니아인 듯, 내가 들어보지도 못한 한국 가수들까지 포스팅 되어 있었다. 나보다 한국가수들을 더 좋아하나보다. 영문웹페이지를 뒤지며 신나게 득템한 후 폰에 쓸어 담았다. 
 
폴더명은 ‘득템’. 요즘 들을 노래가 없어서 고역이었는데, 득템한 음악들이 신나는 내일의 신호탄처럼 들릴 지경이다. 요새 ‘사는 낙’이 없다고들 많이 이야기한다. 그냥 살면 낙이 없다. 
 
그런데 내가 찾아다니고 관심을 가지고 여기저기 뒤지고 다니면 신기하게도 뭔가 재미있는 것들이 툭툭 내 앞에 떨어진다. 난 들을 노래가 많아져서 참 행복하다.
 
행복과 불행은 표리일체인 거 같다는 생각을 자주하는데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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