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미영 종로 윤동주문학관 해설사
홍미영 종로 윤동주문학관 해설사
  • 이원배 기자
  • 승인 2013.02.15 1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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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순수한 윤동주의 시가 더 많이 알려졌으면”

별헤는 밤

윤동주, 1941.11.5.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있읍니다.//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듯합니다.// … 별 하나에 추억과/별 하나에 사랑과/별 하나에 쓸쓸함과/별 하나에 동경과/별 하나에 시와/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

1998년 결혼 후 줄곧 종로구에서 살고 있는 홍미영 씨는 종로 윤동주문학관에서 해설사로 활동하고 있다. 종로구 청운동에 있는 윤동주문학관은 종로구가 사용하지 않는 수도 가압장 시설을 고치고 윤동주와 그의 시를 기리는 문학관으로 꾸며 2012년 7월에 문을 열었다.

윤동주 시인이 연희전문을 다니던 시절 종로구 누상동에 있는 소설가 김송의 집에서 하숙한 인연과 윤동주 시인의 ‘별헤는 밤’, ‘자화상’, ‘쉽게 씌어진 시’ 등이 이 하숙 당시에 쓰여진 인연으로 종로구가 개관했다. 홍미영 윤동주문학관 해설사도 문학관 개관과 함께 해설사 활동을 했다.

엽서에 적힌 윤동주 ‘서시’의 추억

윤동주 시인은 그가 참 좋아하는 시인이자 맑고 깨끗한 ‘시정’을 담고 있어 시를 읽으면 언제나 마음의 ‘정화’를 느끼기 때문이다. 또 어릴 적 시인에 대한 기억도 잊지 못한다.

“어릴 적 초등학교 졸업 무렵인가 윤동주의 서시를 읽었습니다. 읽고 정말 좋하고 지금도 가장 좋아해요. 어느 날 문방구에 갔더니 서시가 적힌 엽서가 있어 그걸 구해갖고 왔지요. 그게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그래서 저에겐 ‘영원한 오빠’로 남아 있습니다.”

홍 해설사는 관람객에게 해설을 할 때 윤동주 시인에 대한 정보는 가급적 말하지 않는다. 그런 정보는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대신 홍 해설사는 윤동주 시인의 잘 알려지지 않은 가정사, 일화, 유족들이 남긴 이야기 등을 들려준다. 그러면 시인이 훨씬 더 친근하게 느껴지고 관람객도 흥미로워한단다.

예로 홍 해설사는 윤동주 시인이 법대나 의대를 가기를 희망한 아버지의 뜻과 다르게 문과 진학을 고집해 같이 밥을 먹을 때면 분위기가 어색했다는 일화를 들려준다.

“국민에게 잊혀가는 것 같아 아쉬워”

윤동주문학관엔 중국인, 일본인 방문객도 종종 찾아온다. 중국과 일본 모두 윤동주 기념관이 있다. 홍 해설사는 그 중에서도 중국에서 온 조선족 동포가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중국 길림성-은 윤동주 시인의 고향-에 있는 윤동주문학관에도 다녀왔다는 그는 종로에 있는 윤동주문학관이 더 좋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홍 해설사는 요즘 안타까움이 많다. 한국을 대표할만한 시인인 윤동주 시인이 한국인에게 점점 잊혀져 가는 것 같아서이다.

그는 “한국인에게 많이 잊혀져 가는 것 같다. 청소년도 ‘누구냐’ 하면서 잘 모르고 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그래서 그는 더 열심히 활동을 하겠다고 다짐한다.

“윤동주문학관을 다녀간 사람들의 입을 통해 맑고 순수한 윤동주 시인이 많이 알려졌으면 합니다. 시인의 맑은 시는 읽혀지고 절대 죽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윤동주문학관을 조성한 김영종 구청장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윤동주 시인은 1917년 중국 길림성 화룡현 명동촌에서 출생해 1945년 2월 16일 일본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사망했다.

서울 강남에서 살다 결혼 후 종로로 이사 온 홍 해설사는 종로의 아름다운 경치와 운치있는 문화재들의 매력에 빠져 ‘종로 골목길해설사’로 활동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볼거리가 많은 ‘잘 차려진 밥상’인 종로의 아름다움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던 중 윤동주문학과 해설사 교육을 받을 기회가 있어 그는 망설임 없이 교육을 이수하고 작년 가을부터 윤동주문학관 해설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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