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에서-오규원
용산에서-오규원
  • 정혜영 시인
  • 승인 2013.02.15 16: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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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에는 무슨 근사한 얘기가 있다고 믿는
낡은 사람들이
아직도 살고 있다. 詩에는
아무것도 없다
조금도 근사하지 않은
우리의 生 밖에.

믿고 싶어 못 버리는 사람들의
무슨 근사한 이야기의 환상 밖에는.
우리의 어리석음이 우리의 의지와 이상 속에서 자라며 흔들리듯
그대의 사랑도 믿음도 나의 사기도 사기의 확실함도
확실한 그만큼 확실하지 않고
근사한 풀밭에는 잡초가 자란다.

확실하지 않음이나 사랑하는 게 어떤가.
詩에는 아무것도 없다. 詩에는
남아 있는 우리의 生밖에.
남아 있는 우리의 生은 우리와 늘 만난다
조금도 근사하지 않게.
믿고 싶지 않겠지만
조금도 근사하지 않게.

■ 작품출처:오규원(1941.12. 29 ~ 2007. 2. 2) 오규원 시전집1. 왕자가 아닌 아이에게 P149

■ 시의 본문에는 제목인 ’용산에서‘를 짐작할 만한 아무런 구절이 없다. 용산에서 ’용산 참사’가 있었고 서울에서 한 시인이 시작한 ‘희망버스’가 있었다. 르네 마그리트는 파이프를 그려 놓고 그 밑에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적어 놓았다. 덕분에 그 작품은 근사한 것이 되었다. 근사한 것은 무얼까. 생의 나날은 나아지지 않고 부모님은 병들고 늙어가며 生생의 누추함을 견디고 계신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꽃이 되었을까? 평생 시를 쓰고 가르쳐온 시인이 ‘시를 근사한 것’이라고 아직도 믿는다면 ‘낡은 사람’ 이라고 말한다.  문인수의 ‘절경은 시가 되지 않는다’는 발언을 떠올리면 이해하기가 좀 더 쉬울까. 베르롤트 브레히트는 ‘참으로 나는 암울한 세대에 살고 있구나!’ 라고 적었다. 누군가 시가 ‘조금도 근사하지 않다’고 아무리 강조해도 우리는 시를 향한 ‘근사한 환상’을 버리지 못 할 것이다. 믿고 싶지 않지만 조금도 근사하지 않은 생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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