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부를 때, ‘엄마’라고 불릴 때
‘엄마’를 부를 때, ‘엄마’라고 불릴 때
  • 우선희 서울기독대학 강사
  • 승인 2013.02.2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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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희 서울기독대학강사·헤드헌터

저는 최근에 전쟁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상을 구해서 틈이 날 때마다 보고 있습니다. 세계 대전과 이라크 전쟁 등에서 생존자들이 인터뷰에 남기는 말을 듣기 위해서입니다. 

전쟁의 역사적 의미를 알기 위해서도 아니고, 이분들의 트라우마를 파헤치기 위함도 아닙니다.

인간에게 숨어 있는 공격성과 파괴적 본성이 집단적 시스템을 통해 다투는 현상에 대해, 선택의 여지가 없이 오롯이 그 상황에 직면했던, 즉 가장 제한적인 환경에서 살아남은 개인이 전쟁을 통해 남기는 증언이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전쟁에 비유되는 현대인의 일상, 시대와 관점의 변화, 사는 모습과 물리적 힘의 의미, 전쟁과 산업의 관계, 전략과 게임 등, 거시적인 통찰은 큰 수확이기도 합니다.

뜻밖에 저는 ‘엄마’라는 단어에 이르러, 마음이 멈추었습니다. 아린 마음으로 ‘우리는 어떻게 존재 하는가’를 묻게 되었습니다. 세계 1차 대전의 생존자였던 해리 패치(Harry Patch, 1898생)라는 분의 말씀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동료가 유산탄을 맞고 어깨에서 허리까지 잘려나간 상태로, 내장이 옆으로 흘러 나와 있고 피가 엄청나게 흐르는데, 해리와 다른 동료가 다가가자 자신을 쏴 달라고 말했답니다.

총을 쏘기도 전에, 말을 한지 한 30초 만에 죽었는데, 그의 마지막 말은 ‘엄마(Mother)’였으며, 그 ‘엄마’라는 말이 해리를 평생 괴롭혔다고 합니다.

정작 자식을 키우는 어미이기도 한 저는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졌습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만 한 살이 되면 단어 하나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이른바 일어문(一語文) 시대를 맞이하게 되고,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배워서 사용하는 단어가 주로 ‘엄마’ 혹은 ‘맘마’입니다.

엄마는 아가를 먹여서 생존하게 하는 존재이며, 조건 없이 보살피는 존재이지요. 아가가 엄마라고 부를 때에, 무슨 조건을 머리에 설정하여 ‘엄마’라는 뜻을 한정적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없을 것입니다.

해리의 동료가 전사하면서 마지막으로 외쳤을 ‘엄마’도 조건 없이 사랑하였을 그 엄마를 생각하며, 단 한 마디로 모든 마음을 담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생물학적인 엄마는 물론이고 가슴으로 자식을 낳은 엄마. 엄마는 절대적인 신뢰이며 조건이 없는 수용이며 안전한 보살핌입니다. 어떤 소유나 어떤 성취로 견줄 수 없는 존재론적 고상함이라 여겨집니다.

요즈음은 이 ‘엄마’의 속성이 불안하게 흔들려 왔습니다. 부르는 ‘엄마’도 불리는 ‘엄마’도 조건과 서열과 비교와 공격이 숨어서, 조급하게 사회 전체에 흔들린 채로 퍼져 있습니다.

우리는 자애, 자비, 인내, 신뢰, 양순, 청종, 겸손이 좋다고 여기면서도 먼 곳으로 밀쳐내고 공격, 혼자 차지하기, 빼앗기를 향해 달렸습니다.

자식 노릇도 힘들고 부모 노릇도 힘든 이 시대에, 아가의 ‘엄마’를 회복한다면 전쟁과도 같은 이 세상이 훨씬 따뜻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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