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보는 안목
문화를 보는 안목
  • 정민희
  • 승인 2013.02.28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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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품관 개점때 설치된 갤러리모습 지금은 매출을 위한 공간으로 사라졌다.

국가부도 위기가 닥친 1997년 말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게 될 때였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학교 전공과는 전혀 상관없는 대기업에서 일했고 월급도 처음 받아봤다. 재테크라는 용어도 생소했지만 사회생활의 쓴맛을 보며 번 돈은 저축하고 집에서 타서 쓰는 뻔뻔한 20대였다.  당시 은행 서비스라야 출납, 예금, 이자는 주는 대로, 상품 종류도 별로 없었다.

그러다 IMF를 만나며 금융시장의 다양화가 급진전되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차이도 이 시기에 확 벌어진 것 같다. 급등하는 달러 가에 하루에 40개씩 기업이 도산하고 코스피 지수는 270까지 밀리는 상황이 벌어졌었다. 부동산 또한 급락하는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여기저기 수익률 24%라는 리플릿이 날아다니고 돈이 돈 버는 시기이기도 했다. ‘바이 코리아’라는 선정적인 제목의 금융상품에 외국인들이 나라를 뺏아가는 줄 알았다. 뮤추얼펀드, 스팟펀드, 마구 쏟아져 나오며 최근엔 아트펀드까지 출시되어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고 지금처럼 긴  불황의 터널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후 금융계는 급 선진화가 되면서 매주 엄청난 상품을 쏟아내고 있다. 똑똑해진 고객에 맞추는, 최우량고객을 위한 마케팅이 쏟아지면서 PB(Private Bank)센터가 생겨났고 슈퍼 뱅크들은 강북, 강남의 최고 비싼 건물에 개인고객 상담실을 화려하게 치장을 하게 된다. 그 개인고객 상담실의 격을 올려주는 소품으로 예술, 와인, 골프, 공연 등 문화가 합류하게 됐다.

최고 임대료를 지불하며 특급호텔수준의 인테리어를 하면서 벽에 걸린 건 진품이 아닌 종이프린트 액자이곤 했다. 아트컨설팅을 하는 나로서는 PB 센터장을 먼저 깨우치게 하는 일, 미술이 감상을 벗어나 투자라는 사실과 증여의 장점 등 이런저런 교육에 힘을 쏟았다. 최우량고객 100명에게 미술투자라는 생소한 분야를 알리던 날은 큰 보람의 시간으로 기억한다.

언론에 관련 기사가 나가서야 깨우친 어느 증권사 센터장이 상담을 해왔다. 미술품 펀드 필요성에 대한 준비 작업을 하자고… 벌써 10년이 되어가지만, 아무 인식이 없는 고객들에게 미술을 접근시키는 첫 방법은 출입구에 갤러리를 만들고 오다가다 자연스럽게 눈에 익숙하게 하는 것이었다.

▲ VIP 공간의 조상근 작품.
몇 차례 전시기획이 이루어졌지만 타 업종과 미술을 결합시켜 상생하는 결과를 얻어내는 일은 그야말로 눈에 보이지 않는 이슬 같았다. 그 첫 번째 이유는 대표자가 원하는 것은 그림이 팔려 수수료를 받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전시회를 하는 몇 군데 은행이 생겨났지만 지속성을 가진 곳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미술이라는 것은 창작하는 작가도 장거리 마라톤으로 멀리 봐야하는 것이고 마케팅에 도입하려는 기업도 단시간 수입창출을 위한 것이라면 아예 다른 것을 찾아보는 게 낫다. 혹하는 상품구조를 만들면 얼마든지 회사이익에 도움이 될 것이다.

새해를 맞아 거론되는 미술품 양도세 부과는 미술시장의 심리적 위축을 부채질하지만 중저가작품이야말로 지금이 소장하며 감상하기에 적기이다. 분명 부동산 하락과 개별 주식 하락률에 비해 더 큰 하락을 하였기에 양질의 작품을 쉽게 고를 수 있는 기회다.

개개인의 문화적 발전이 곧 21세기 국가경쟁력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확신한다. 새 정부에서 문화계에 대한 공약이 여기저기 봐도 찾기 어려운 것은 미술인으로서 매우 유감이다. 뿌리를 내리기조차 힘든 저질 체력의 창작인은 생명력이 더 짧아지기도 할 것이다.

무엇보다 문화정책, 실행하는 기업, 내공 갖춘 예술가 등의 삼박자가 맞지 않으면 남이 하니 따라하다가 실패에 그치는 것을 흔하게 보아왔기 때문이다. 멀리 보는 인내심을 갖고 세심함을 갖춰야 알찬 열매를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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