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행하게 된다-문인수
남행하게 된다-문인수
  • 정혜영 시인
  • 승인 2013.03.08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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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객지의 총 본부 같다, 투덜대고 싶다.
서울역에 내릴 때마다 대뜸 낯설다. 대낮인데도 덜컥,
저물 것처럼 왁자지껄하다.

이제 저 엄청난 인구가 모두 널 모를 것이니, 뭐든 짊어지고 너 혼자 걷게 될 것이다.
마음을 에워싸는 먹물 같은, 노숙 같은 그늘이 당연
전국에서 가장 크고 침침하고 눅눅할 것이다.

집에 가고 싶거나, 집에 가고 싶지 않을 때
서울 가면 풀린다. 서울역에 내리면 곧장 그길로 되돌아가려는 마음이 바로 집이다.
탈출하라, 늦어도 당일 일몰 전 오후 4시를 넘지 마라.

유동인구 속에서도 여지없이 들킨다. 사방 천 리가 적막한
그 어둠의 투망이 대로상에서 하필 널 덮칠 것이다.


■ 문인수(1945~  ),  현대 시학,  2005년 7월.

■ ‘투덜대고 싶다.’ 이 말이 참으로 입에 착 달라 붙는다. 파리의 뒷골목이나 뉴욕 한복판이었다면 시인은 어떻게 언술할지 궁금하다. 소란하고 낯선 서울역에서 웅숭그린 막막한 마음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마누라가 상금 3분의1을 내 아들뻘 되는 애인한테 줘버렸어… 애인 이름도 나와 비슷해. 예수라고…” 그의 시적인 위트다. 미당문학상 상금을 봉헌금으로 내놓은 모양이다. 예수, 문수, 이름이 비슷하다. 요즘에는 퍼머 탓인지 예수처럼 머리카락이 구불거린다. 시인의 안내로 노랫말에서만 듣던 대구의 청라 언덕을 올라갔다. 벽안의 선교사 어머니를 따라 먼 이국에 와서 묻힌 딸들의 무덤이 거기 있었다. “청라 언덕의 별, 목성이 참으로 밝고 명랑”하다고 한다. 문인수 시인은 자신을 찾아온 지인들이 집으로 돌아갈 때 대구역에서 기차가 떠나기까지 지켜보고 있다고 한다. 그들이 마음의 집으로 잘 찾아갈 때 까지 거기 명랑하게 붙박혀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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