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여행 가실래요?’
‘같이 여행 가실래요?’
  • 김성은 동국대일반대학원생
  • 승인 2013.03.15 11: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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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은 동국대일반대학원생

친구에게서 문자가 왔다. 평소에는 문자 사용한다고 그렇게 구박을 하더니 어쩐 일인지 불쑥 먼저 문자를 보내온 것이다.

별 내용이 아니겠거니 했는데 “여행가자”는 짤막한 문구가 들어있었다. 처음에는 농담이려니 했다. 그 친구에게 여행은 언제나 멀고먼 미래의 계획들 중 하나였고 나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답문은 “언제 갈 예정이냐”고 물었다.

그런데 의외의 대답이 왔다. 올해 5월쯤 베이징에 가자는 제법 구체적인 계획이 담긴 대답이었다. 놀라우면서도 궁금해졌다. 도대체 무슨 바람이 불어서 여행을 가자고 하는 것일까.

친구의 대답은 담백했다. “작년에 우리 힘들었잖아” 짧은 한 마디였지만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들었다. 작년 한 해 동안 우리에게는 처음이라는 단어가 붙는 일 치고는 감당하기엔 너무 벅찬 일들이 많이 벌어졌었다. 아버지를 잃어버린 친구, 동생을 하늘로 떠나보낸 친구도 있었다. 그리고 병원에 엄마가 장기간 입원한 친구들도 있었다.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그들의 마음 생체기는 상당히 컸었다.

그러니까 친구가 제안한 여행의 의미는 작년 한 해를 잘 견뎌냈다는 위로를 하고 싶어서였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별 거 아닌 일로 호들갑 떤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아직 그런 일들을 침착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가 아니다. 겉으로는 우리도 다 컸다고 어른인 체하려 들지만 그 안은 아직 미숙한 어린 아이가 고집을 부리며 버티고 서 있는 것이다.

특히 작년 한 해를 힘들게 보낸 건 그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집에 항상 휠체어가 대기하고 있을 만큼 친구 엄마는 많이 아프셨다. 친구는 거의 집 안에 머물러 있었다. 언제 응급실에 가야할 지 알 수 없는 상황 때문이었다.

이번에 여행을 가자는 제안은 한없이 들뜨면서도 마음 한 켠에서는 내려놓을 수 없는 우려가 들려있었다.
그런데 정작 의외의 복병은 따로 있었다. 문제는 우리의 ‘무한 개인주의’였다. 처음 목적지를 정할 때부터 우리는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베이징으로 무사히 안착할 듯 하더니 이내 교토, 상하이, 방콕, 씨엠립, 대만까지 무수한 장소가 쏟아져 나왔다.

나는 장소는 크게 상관이 없었다. 그냥 처음으로 친구들하고 같이 여행을 간다는 사실이 중요했으므로. 그런데 갈수록 미궁으로 빠지는 모양새를 보고 있자니 슬금슬금 짜증이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며칠간의 설왕설래 끝에 서로 한 발짝씩 물러나고서 목적지는 교토로 정해졌다.

산 넘어 산이라고 목적지가 정해지고 나니, 굳이 여행을 5월에 가야겠느냐부터 자유여행 가봤자 아무 소용없다는 불만까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서로 조금씩 그동안 쌓아뒀던 서운했던 감정이 터져 나왔다. 결국 여행을 계획한 처음의 의미는 기억 저편으로 ‘고이 접어 나빌레라’가 되어버리고 남은 건 넝마조각이 된 감정 밖에 없었다.

피곤했다. 차라리 솔직하게 서운했던 감정들을 서로 털어놓고 이야기를 하면 좋으련만. 나와 친구들은 그러지를 못했다. 덕분에 넋두리를 들어주는 건 고스란히 내 몫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들어주다보니 이번에는 여행경비가 문제가 되어 버렸다. 일본에 가는 게 마음에 안 들었던 친구는 이참에 처음부터 다시 정하면 안 되겠냐고 이야기를 했다. 결국 마지막에는 내가 지쳐서 백기를 들었다. 여행을 엎은 것이다.

그랬더니 다들 못내 아쉬운 기색들을 하고선 “그냥 그렇다고”란다. 도대체 어쩌라는 건지 의미를 알 수가 없었다. 작년 한 해 동안 서로를 그렇게 끌어안으려고 애쓰던 모습은 어딜 가고 각자 가고 싶은 관광지만 맞춰서 여행을 짜자고 주장을 하는 것일까.

가기 전부터 이렇게 삐걱거리는데, 막상 여행을 가면 싸우는 건 정말 일도 아니겠구나 싶었다. 차라리 여행을 안가는 편이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반드시 가겠다는 의지 같은 건 애초에 있지도 않았다. 그냥… 단지 처음으로 친구들과 같이 여행을 간다는 게 좋았고, 한 번도 제안해준 적 없는 친구의 의견이어서 반가웠었다.

그런데 갈수록 서로 주장만 세지고, 감정만 사나워지는 꼴이라니. 친구들하고 여행가는 것도 이렇게 어려운데, 하물며 나라를 운영하는 일은 오죽할까 싶었다. 처음으로 온전히 국회가 엉망진창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이해가 됐다. 그러면서도 못내 아쉬운 마음은 여전히 깨끗하게 접히지가 않는다. 오히려 좀 울적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 날 이후로 며칠째 친구들은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침묵 중이다. 전화는커녕 카톡도 조용하다. 심지어 먼저 말을 붙여 봐도 묵묵부답이다. 아~ 치사하다. 진짜 이럴 때는 혼자 노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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