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을 슬기롭게 건너는 법
고독을 슬기롭게 건너는 법
  • 김진웅 선문대학교 언론광고학부 교수
  • 승인 2013.03.15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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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웅 선문대 언론광고학부 교수

현대인은 점점 고독해지고 있다. 결혼하지 않는 독신, 가정이 해체되는 이혼, 직장을 잃는 해직, 정년으로 인한 퇴직 등은 우리로 하여금 먼저 고독과 마주서게 한다. 고독은 타인과의 관계 단절이자, 외부 세계로부터의 고립이다. 고독은 일단 소통이 중단되는 불통현상이다. 자칫 외로움, 소외, 단절로 이어지다 우울증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고독은 모두가 대면하게 되는 보편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상기한 상황에 처하지 않더라도, 물질적 풍요는 개개인의 자유로 이어지며, 자유는 고독과 이어진 끈이기도 하다. 따라서 고독은 양면성을 지닌다. 孤-獨 하거나 高-獨 하거나.

사람은 보통 기존에 유지하던 소통관계를 이어가려는 관성을 지니게 된다. 자꾸만 밖으로 나가 타인과 만남을 가지려 한다. 동창회, 동호회, 술자리 등 다양한 만남을 통해 고독을 떨쳐 버리려 한다. 공간적 고독을 벗어나려는 몸짓들이다.

아니면 집에 틀어박혀 간접적 소통으로 고독을 떨쳐버리곤 한다. TV를 보거나, 인터넷을 하거나 게임에 빠지는 등 다양한 매스미디어에 탐닉하는 행위이다. 특히 최근에는 스마트폰이 무료하고 외로운 시간을 채워주는 효율적인 수단이 되고 있다. 시간적 고독을 벗어나려는 몸짓들이다.    

이런 행위들은 나름대로 고독을 극복하는 효과적인 방책일 수 있다. 하지만 고독감, 외로움을 궁극적으로 해소시키지는 못한다. 밖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감동적인 TV 프로그램이 끝나면, 다시 고독감이 밀려오곤 한다.

일상적 삶에서 혼자의 시간이 많으면 많을 수록 더욱 고독감이 엄습해 올 수 있다. 그래서 고독한 시간에는 온전히 자기 자신과 홀로 마주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외부 세계의 소통공간에 끼려고 안간힘을 쓰거나, 매스미디어를 통해 외부세계와 접속의 끈을 놓지 않으려 하지 마라. 과감하게 이들과 단교하라.

대신 나 자신과 마주하는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주어진 현재의 시공간에서 나를 바라보아라. 나를 대상화하는 것이다. 거울 없이 자신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러려면 마음이 가라앉아야 한다. 물속의 다슬기를 잡으려면 물결이 일지 않는 고요한 수면상태가 되어야 하듯이. 흔히 명상은 마음을 바라볼 수 있는 좋은 방편이다. 고요히 앉아 침묵하면서 자신의 내면세계를 바라보는 것이다. 또 글쓰기 역시 좋은 방법이다.

명상이 무위적 행위라면, 글쓰기는 자신의 생각이나 마음을 표현하는 유위적 행위이다. 좀 더 적극적인 명상이 될 수 있다. 그밖에 느리게 걷는 것도 바람직하다. 즉 산책이다. 발걸음은 적어도 호흡보다 더 느린 속도를 유지토록 한다. 그러면 발걸음, 호흡 그리고 우주의 리듬이 일치하는 조화로움을 느낄 수 있다.    

이런 방법들은 홀로 자기만의 시간을 확보해야 가능하다. 정신 없이 일한 후에는 짜릿한 여행보다 고독한 순례를 떠나보라. 순례는 꼭 특정 장소로의 이동일 필요는 없다. 여행을 다녀온 사람과 순례를 다녀온 사람의 차이는 그 후의 삶에 투영된다.        

외부세계와의 사회적 소통관계가 단절되는 현상은 고독을 안겨준다. 이를 자기 내부세계와의 소통을 통해 극복해야 한다. 그러면 고독(孤獨)은 참자아를 발견하는 고독(高-獨)의 길로 거듭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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