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소리- (6)
세상의 모든 소리- (6)
  • 다율(多律) (재)월드뮤직센터 이사장
  • 승인 2013.03.16 12: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밑바닥 집시의 절규’ 플라멩코

월드뮤직이라는 넓은 산과 들에는 온갖 춤과 노래가 저마다의 생명력을 자랑한다. 그 중에 상당한 부분을 집시들의 음악이 차지하고 있다. 그들의 질긴 생명력과 같이. 집시음악의 대표선수 중의 하나가 스페인의 집시음악, 플라멩코이다.

스페인은 음악적 전통이 넓고 깊어 많은 뛰어난 음악이 있는데도 스페인 남부의 안달루시아 지역의 음악 플라멩코가 스페인의 대표선수로 인식되고 있는 것도 흥미롭다.

최하층 신분 전락한 집시의 애환

스페인은 서기 711년부터 1492년까지 약 800년간 존속한 이슬람왕국의 영향으로 동방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다. 그러나 1492년 기독교 세력의 레콩키스타(국토회복)운동이 성공하여 스페인에서는 이교도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이 시작되었다.

탄압의 대상에는 무어인, 유태인과 더불어 집시들도 포함되었다. 집시들은 12세기 인도에서 유랑을 시작하여 15세기 말에 스페인에 이르게 되었는데 바로 산악지역으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집시들은 정부의 특별 관리 지역으로 격리돼 최하층 단순 노무직으로만 일할 수 있었다. 이 시기의 집시들이 밑바닥에서 무반주로 연주한 노래가 플라멩코의 기원이다. 무반주였기 때문에 손뼉을 쳤고, 밑바닥 집시의 절규는 칸테 혼도(cante jondo)라는 울부짖는 독특한 창법으로 표현하게 되었다.

18세기 말까지 계속된 집시에 대한 탄압은 플라멩코라는 피맺힌 절규로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니까 플라멩코는 집시의 슬픔이 이베리아반도의 다양하고 오랜 음악적 전통과 결합되어 탄생한 예술인 셈이다. 19세기 중반에 들어와서 플라멩코는 안달루시아 전역에서 큰 호응을 받게 되어 점차로 세비야 등 안달루시아 지역뿐 아니라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등 북쪽의 대도시에도 퍼져 나가게 되었다.

우리 판소리 ‘득음’과 비슷한 발성

이때부터 악기반주가 따르고 플라멩코는 어느 정도 정형화된 공연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플라멩코 기타가 덧붙여지고 캐스터네츠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플라멩코는 칸테(소리), 토케(기타), 바일레(몸짓)의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지게 되어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플라멩코의 칸테는 우선 소리가 탁하고 표현의 범위가 넓다는 것이 우리나라의 판소리와 닮았다. 득음의 경지를 거쳐야 소리를 할 수가 있는데 가족이 같이 공연하는 경우가 많다.

그라나다의 알함브라궁 건너에 있는 알바이신 지구의 동굴에서 본 플라멩코나 세비야에서 본 공연이나 큰 차이가 있어보이지는 않았다. 기타연주자, 남성과 여성 춤꾼, 그리고 리더인 소리꾼 모두 10여 명 정도가 한 몸같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집중하는 모습은 꼭 한 번 볼만하다.

플라멩코의 특징은 절도와 카리스마이다. 특히 절정의 순간에서 소리와 춤(몸짓)이 동시에 칼로 무 베듯이 끝나는 클라이맥스는 절로 흥분을 자아낸다.

관광상품으로 본질 잃은 플라멩코

소시민과 관광객을 위한 공연으로 플라멩코의 본질적인 모습이 사라졌다는 비판도 있다. 이를 ‘짝퉁 플라멩코(아플라멩가도·aflamencado)’라고 부르기도 한다.

플라멩코는 두엔데(duende)라는 정서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두엔데는 ‘절망적으로 버림받은 상태의 감정’이라고 설명한다. 이 두엔데에 기반하는 플라멩코를 정통 플라멩코라고 볼 수 있다. 스페인, 특히 안달루시아에 가게 되면 순수한 형태에 가까운 공연을 찾아보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엘 까마론 데 라 이슬라(El Camaron de la Isla)는 1960년대부터 1992년 4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대표적 소리꾼으로 인정받았다. 그와 같이 공연했던 기타리스트 파코 데 루치아(Paco de Lucia)도 플라멩코를 예술로서 승화시킨 아티스트로 평가된다.

플라멩코는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영화의 주제가 되기도 하고 집시가 아닌 세계의 여러 나라 예인들이 나름의 플라멩코를 공연하는 등 발전하고 있는데 이를 ‘누에보 플라멩코’라고 부르기도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