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질 권리
잊혀질 권리
  • 최소영 회사원
  • 승인 2013.03.22 13: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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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소영 회사원
나는 한 유명 입시학원 계열 출판사에 다니고 있다. 소위 ‘전문직’이 되기 위한 소양을 평가하는 시험 대비용 수험서를 만드는 곳이다. 그리고 우리 회사 대표님은 유명한 입시 강사다. 대표님의 일을 도와 드리고 책을 만들면서, 나는 ‘전문직’이 되고 싶어 하는 이십대의 청년들을 매일 만난다.

그들은 대개는 착하고, 성실하다.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는 친구들. 그렇지만 내가 만나는 그 친구들 중에 누군가는, 타인의 삶의 궤적을 훼손하고 함부로 짓밟으며 상처를 내기도 한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 익명게시판에서.

나도 가끔 그 익명게시판을 본다. ‘익게(익명게시판)’에서 ‘커뮤니티 ID 남한테 빌려줘도 자신 있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아무도 나설 이가 없다. 과연 이들이 이십대 청년인가 의심할 만큼 저급하다. 타인에 대한 근거 없고 도를 넘는 비방, 욕설과 음담패설만이 난무한다.

우리가 도덕책이나 윤리책, 아니면, 사회 통념상 지킬 수 있는 상식과 예의는 찾아보기 힘들다. 어느 누군가 게시판에서 비상식적이거나 심한 비방을 담은 글들을 자제하자는 글을 올리면, 반성하기는 커녕 ‘어디서 선비질이냐’, ‘너나 그렇게 살아라’ 등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들로 댓글을 단다.

아마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은 상상도 못 할 정도의 말들일 것이다. 읽을 때 마다, 이 사람들이 언젠가 전문직이 될 텐데, 나는 어떻게 이 사람들을 믿고 의지하며, 이들에게 전문인으로서의 덕망과 소양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의심을 품게 된다. 이 사람들이 전문직이라고 대우받고 사는 사회라면, 나는 차라리 이민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치가 떨릴 지경이다.

우리 회사 대표님은 10년 넘게 1등의 자리에서 꾸준히 수험생들에게 인기가 많고, 많은 합격생들이 매 해 찾아오는 훌륭한 분이다. 덕분에 그 커뮤니티에서 많이 회자되는 분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 분에 대한 글들은, 우리가 인터넷에서 보는 절반 이상의 댓글들이 그렇듯 하나같이 악성 댓글이다.

혹시 누군가 단 한 사람이라도 나에 대해 그렇게 이야기 한다면, 나는 사회생활도 못하고, 평생 가슴에 상처를 안고, 어디로 도망가 살았을 것 같다. 우리 대표님에 대한 악성댓글은 일분에 하나씩 올라온다. 10년째. 그래서 대표님은 신경쇠약, 우울증, 탈모, 피부염등으로 매일 같이 병원에 가고, 약을 복용하고, 심리 치료도 받으러 다니고 있다.

내가 처음 이 회사에 왔을 때, 우리 회사 웹사이트와 커뮤니티 익명게시판에 악성댓글을 올린 사람들을 처벌해달라는 탄원서를 경찰서에 낸 적이 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모두 반려되었다. 5개월 동안 거의 매일같이 탄원서를 냈지만, 아무것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명예훼손분쟁조정위원회에 의뢰 해 보기도 했다.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 아무리 심각한 악성댓글이라도, ‘개인의 주관적인 감상이나 판단’ 으로 처벌이 어렵고, 운이 좋아서, 혹시 글을 올린 이를 잡는다 한들, ‘내가 쓴 글이 아니다’라고 잡아떼면 처벌할 방법이 없다는 이유가 대부분이었다. 그럼 이처럼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겠냐는 질문에 사이버수사대에서 이렇게 말해줬다. ‘심심한 위로를 드립니다.’

악성댓글은, 그 말 자체로, ‘나쁜 말’, 이 아닌가. 그것을 나쁜 말이라고 하면서도 그 말로 입은 피해는 ‘내가’ 입증해야한다. 그 말이 나의 명예를 얼마나 어떻게 훼손했는지도 내가 입증해야 하고… 내가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다.

올린 이는 어떤가. 근거도 없는 나쁜 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의 표현의 자유, 개인의 주관적인 판단이나 감정이다.’ 혹은 ‘나는 그런 말 한 적 없다’는 말이면 책임을 면하기 충분하다. 표현의 자유도 중요하고, 인터넷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니까, 이용자 교육도 중요하고, 자정의 노력도 중요하다.

그런데, 그걸로 정말 충분할까. 이런 저런 기회로, 열성적으로 미디어 교육을 하는 분들도 많이 만났고, 그 분들의 노력이 어떤 변화를 가지고 오는지도 보고 있다. 다행이다. 그런데, 그걸로 충분할까. 이런 노력은 점점 그 ‘판’이 커져가는 익명사회의 부작용을 완화시키기에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도 물론 동의하지만, 어째서 우리 사회는, 피해자를 더욱 적극적으로 보호해주지 못하는가.

얼마 전 한 국회의원이 ‘잊혀질 권리 법안’을 가지고 인터뷰를 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최근에 사회나 학계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잊혀질 권리. 나는 이 말을 하루에도 수 십 번 되새긴다. 지난해 EU에서 잊혀질 권리를 법제화하는 중이라는 기사도 본적 있다. 독일에서, 수감생활을 마친 사람이 자신은 죗값을 치룬 것과 다름없으니 자신의 범죄에 대한 기사를 그 매체에서 삭제해달라는 소송에서 승소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인터넷에서는 그것이 비록 근거가 없고 타인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것이라도 무차별적인 복제와 확대 재생산을 막을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완전히 영구적인 삭제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원형감옥’이라고 표현했을까. 우리 대표님은 ‘나도 잊혀지고 싶어요. 그것이 권리로 인정받을 수 있다면, 나도 잊혀질 권리를 갖고 싶어요.’하고 말씀하셨다.

오늘도 병원에 다녀오시는 대표님께 ‘심심한 위로’ 보다 다른 소식을 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제, 마음고생 좀 덜 하셔도 되겠어요’ 인사를 건넬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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