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봄, 컴퓨터보다 제자와 함께 걷기를
학교의 봄, 컴퓨터보다 제자와 함께 걷기를
  • 권종현 우신중학교 교사
  • 승인 2013.03.22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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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종현 우신중학교 교사.

3월의 학교는 새로운 만남으로 가득하다. 새 학년, 새 친구, 새 담임. 교사들 또한 새로운 아이들을 맡아 새로운 관계를 맺기 위해 애를 쓴다.

누구는 3월에 엄격해야 1년간 학급의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며 평소보다 더 근엄한 인상으로 생활한다.

누구는 첫 만남, 첫 인상을 친근하게 갖기 위해 다양한 방식의 자기 소개와 상담을 하기도 한다. 방식은 제각각이더라도 학생들과 좋은 사제관계를 맺어 보람된 1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은 매한가지다.

새로운 아이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은 교육의 알파와 오메가다. 제아무리 해박한 지식과 뛰어난 강의 실력을 갖추었더라도 상호 이해와 신뢰에 바탕한 관계를 맺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이다.

교육, 성장과 발달은 발생하지 않는다. 일방적 가르침과 필요에 따른 취사선택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3월의 학교는 모든 행정력을 교사와 학생의 관계맺기를 위해 쏟아야한다. 담임교사에게는 학생 이해와 상담을 위한 충분한 시간을 보장해야 한다. 교사와 학생의 의미있는 만남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가장 바쁜 3월, 서류에 치이는 3월

그런데 교사들이 가장 바쁘다는 3월의 학교는 어떤가. 교사들은 무엇으로 그렇게 정신없는 3월을 보내고 있는가. 교사들은 정작 행정적 셋팅과 서류상의 계획을 깔끔하게 구비하느라 아이들을 놓치는 경우가 다반사다.

교무부, 연구부, 생활지도부, 상담부, 특활부, 보건실, 방과후 학교 등 각 부서에서 요구하는 각종 계획서, 회의록 작성, 실태파악, 조사와 통계 보고서 등만 수십 종이다. 심지어는 전년도 교원성과급 등위를 둘러싼 이전투구로 3월의 감정과 행정력을 낭비한다.

따지고 들면 어느 것 하나 필요하지 않은 것은 없단다. 게다가 관료들은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실적을 위해 한 가지씩의 행정 절차와 서류를 더 요구한다. 그럴수록 교사들은 아이들의 눈보다 컴퓨터 모니터를 응시한다.

아이와 함께 걸으며 소통

3월 중순이 지나서야 처음 가정 방문을 시작하였다. 오로지 한 아이와 시간을 함께 나누기 위한 가정방문이다. 학교에서 집까지 가깝게는 수백 미터, 멀게는 수 킬로까지 아이와 함께 걷는다.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니 무뚝뚝하던 녀석도 말문을 연다.

교실 한구석에서 교무 수첩을 펼친 담임에겐 좀처럼 꺼내기 힘들었을 과거의 아픈 상처까지 스스로 털어놓는다. 앞으로 무슨 일을 저질러도 적어도 이 녀석을 미워하지는 못할 것 같다. 이 녀석 또한 나에게 그럴 것이라 기대한다.

그렇게 도착하여 집안을 잠시 보는 것만으로도 아이를 쉽게 이해한다. 거실에 걸린 그림 하나로 집안의 분위를 느낀다. 아이의 방과 책상 상태, 책장 속에 놓인 책들, 몇 권의 책에 묻은 손때, 거동이 불편하여 집안에 누워 계신 가족을 보는 것만으로도 아이와의 벽은 낮아지고 대화 범위는 크게 넓어진다.

담임교사인 나와 아이의 교육적 상호 작용은 이렇게 길거리에서 발생했다. 그 장소가 운동장, 교실, 매점, 상담실일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모니터와 도장 찍힌 보고서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3월 교사들의 시선은 대부분 컴퓨터와 각종 서류에 억류되어 있다. 왜냐하면 서류는 필수고, 아이들 상담과 관계 맺기는 옵션이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이미 주어진 필수 과제를 수행하는 것만으로도 숨차다. 3월의 학교는 교육 본연의 활동을 교사의 선택 과제로 맡겨 놓은 꼴이다. 이제 시작한 우리 반 가정방문 상담은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 봄날이 가기 전에 우리 반 아이들 모두와 한 차례씩의 깊은 만남을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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