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그리로 오라. 거기 빵들이 얌전히 고개 숙이고 있는 곳. 황혼이 유난히 아름다운 곳, 늦은 오후면 햇살 비스듬히 비추며 사람들은 거기서 두런두런 사랑을 이야기 한다,
그러다 내다본다, 커다란 유리창으로 황금빛 햇살이 걷는 것을, 그러다 듣는다, 슬며시 고개 들이미는 저물녘 바람 소리를
오래된 플라타너스 한 그루 그 앞에 서 있다, 이파리들이 황혼 속에서 익어간다, 이파리들은 하늘에 거대한 정원을 세운다,
아주 천천히 날아가는 새 한 마리, 실뿌리들은 저녁잠들을 향하여 가는 발들을 뻗는다
가끔 그리로 오라, 거기 빵들이 거대한 추억들 곁에 함초롬히 서 있는 곳
허기진 너는 흠집투성이 계단을 올라간다
이파리들이 꿈꾸기 시작한다
■ 강은교(1945~ ) 70년대, 동인집, <고래>.
■ 혜화동의 어느 빵집 안에서 시인은 오래된 플라타너스 한 그루를 보고 있다. 아마 그 빵집에서 시인은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고, 만났을 것이고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헤어졌을 것이다. 강은교의 시에는 봄날의 햇살처럼 읽는 이를 취하게 만드는 리듬이 있다. 이 시는 리듬을 버리고 산문 형식을 취한 듯 하지만 마지막 행인 '이파리가 꿈꾸기 시작' 하는 곳에서 다시 시그널 음악이 들려오는 듯 하다. 안도현 시인은 강은교 시인의 '우리가 물이 되어' 를 언급하면서 아직까지 그 절창에 취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건 국어 교과서를 잘못 만들었거나 우리나라 국어 교육이 잘못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라고 말한다. 빵들의 추억과 빵들의 잠 속에서 시인의 황혼도 아름답게 익어간다. 여름이 깊어지고 모처럼 시인이 부산에서 올라오면 시인을 모시고 그 혜화동 빵집을 찾아 가야겠다. 이파리들이 하늘에 세운 거대한 정원을 보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