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에 덮여 있던 폭력
폭력에 덮여 있던 폭력
  • 우선희 서울기독대학 강사·헤드헌터
  • 승인 2013.03.22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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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희 서울기독대학강사·헤드헌터

연중 상시적으로 언론 매체의 사회면을 채우는 기사거리의 하나는 ‘폭력’입니다.

폭력은 물리적인 힘을 사용하여 남을 제압하는 것을 말하는데, 날이 갈수록 사나운 모습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폭력이라는 단어를 통해 떠올리는 것은, 조직 폭력, 성폭력, 학교 폭력, 언어폭력 등이 있습니다.

그간 산업화와 도시화라는 국가적인 어젠다를 통해 선진국의 반열에 바짝 붙게 된 우리가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워졌고 제도적으로는 민주주의가 향상되었지만 폭력의 문제만큼은 더욱 거칠어졌습니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국가경제정책이 개인의 안전을 지켜내지 못한다면 더 깊이 고민하고 더 넓게 의논할 중요한 문제입니다.

폭력과 관련된 사건이 뜨거우면 언론도 부산해지며 정치권도 요란을 냅니다.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원인과 대책을 내놓기도 하는데, 짜놓은 각색마냥 같은 구절을 이름을 달리하여 심포지엄에서도 혹은 법제화하려는 기초자료에서도 쓰이곤 합니다.

주로 경쟁에 따른 정서적인 압박, 가족 내의 갈등, 사회 부적응, 경제적인 실패 등, 폭력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자들에게 원인과 책임을 연결시킨 후에 사회적인 지지와 관련법의 부재, 관련 교육의 무능함을 열거하곤 합니다. 여태까지 한 결 같이 그랬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동떨어져 있지만 무시하지 못할 사회적인 경향이, 우리들의 행동양식과 마음의 동기와 맞물려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는 이를 1994년 성수대교 붕괴,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같은 해 대구 지하철 가스 폭발 사건에서 찾습니다. 인재(人災)라고 하는 ‘안전 불감증’에 그 원인을 동의하는 참사입니다.

안전에 불감하다는 것은 사람의 목숨과 존재의 방식에 무관심하다는 것이며, 시행하는 사업자의 이익이 일반 시민의 안전할 권리(人權)에 우선하는 상태입니다. 이런 현상이 사회의 전반에 팽배해 있었습니다. 사업의 이익은 일부 소수가 독과점하는 형태였으며, 이들은 사회의 최상위 계층(upper-upper class)을 형성하여 의견을 선도하고 사회의 경향을 이끌어 가게 되었습니다.

폭력을 행하건 자선을 행하건 사람의 마음과 머리에서 나오는 행위의 결과입니다. 좋은 말을 하고 좋은 옷을 입으며 좋은 사무실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내용면으로 인권과 인간 생명과 관련된 안전을 무시하는 것을 시발(始發)로 일반 사회와 다음 세대의 준거 기준은 덩달아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는 쪽으로 동조된다고 보는 것이 제 의견입니다. 폭력의 잉태이지요.

이익의 독과점뿐만 아니라, 부실 공사를 할 때에 혹시 뇌물 같은 것이 지도층으로 흘러갔다면, 엄격히 말해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납고 거칠고 건조한 사회 폭력 현상에 대해 거슬러 올라가 책임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법도 정비하고 신고하여 처벌을 강화하고 교정 프로그램도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그에 앞서 우리 각자의 존재와 권리가 존중되는 가치관으로 순서를 바로 잡아야 하겠습니다.

인권이 중요해지면 폭력도 상당부분 제어됩니다. 사회적인 마인드 세팅이 함께할 때에야 개선과 진전이 일어날 것이라 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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