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사회적 기업이 생산한 제품의 대형마트 판매를 추진 중이라고 한다. 강력한 민간 채널을 통해 사회적 기업의 판로를 열겠다는 복안이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진 27일 농어민과 중소납품업체 관계자들이 서울시청을 방문했다. 이들은 서울시가 대형마트에 권고한 51개 품목 판매 제한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대형마트 판매 제한에 묶여 그동안 유지했던 판로가 막혔다는 이유에서다.
이들 농어민과 중소납품업체는 서울시가 사회적 약자인 골목시장을 살린다면서 또다른 사회적 약자인 영세 생산자들의 생존권을 빼앗는다고 주장한다. 그동안 대형마트의 횡포에도 판로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납품에 매달려온 농민과 중소납품업체들의 입장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이런 마당에 사회적 기업 생산제품을 대형마트에서 팔도록 하는 일은 어떻게 보면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모양새로 보인다. 영세 제조업체나 농민, 중소 납품업체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을 벌이는 셈이다.
서울시는 박원순 시장 취임 후 공유경제 도시라는 밑그림을 그렸고 이는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 양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 정책은 서울시 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부에서도 적극 추진했던 사업이다.
서울시는 정부나 전국 지자체 가운데 가장 빨리, 적극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기 때문에 곳곳에서 불협화음이 나오고 있다. 공유경제와 이를 뒷받침하는 사회적 기업, 사회적 협동조합은 아직 우리나라 국민에게 낯선 개념이다.
이와 같이 국민들의 이해가 부족한 가운데 관련 분야 사업을 추진하는데서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시장(市場)은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형태의 생산과 소비를 주문하는 것과 같다.
최근 서울시는 2013년 예비사회적기업 지정 신청 마감을 앞두고 있다. 이에 따라 26일까지 4차례 가진 예비 사회적 기업 지정 설명회에서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 참석자는 서울시와 각 자치구청이 사회적 기업 제품 구매를 장려하는 일은 시장경제를 부정하는 것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한국 사회에서 제조업이나 서비스업에 종사한 사업주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철저히 미국식 시장경제 모델을 추종해 왔다.
이런 모델에는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의 기반인 ‘사회적 목적’이란 개념을 포함하지 않는다. 단지 이윤창출을 위한 영업활동과 경쟁만 있을 뿐이다. ‘사회적 목적’은 성공한 사업가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기대하는데 그친다.
이같은 경제 체제에 순응해온 국민들에게 사회적 기업이나 공유경제는 뜬금없는 소리로만 들린다. 당장 서울시청 안팎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형마트 품목 제한 갈등도 따라서 쉽게 풀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더 안 좋은 전망은 한국 경제가 불황으로 접어들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전반적인 경기침체는 사실상 사회적 경제 활성화를 통해 극복할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일군 사업체가 도산하는 마당에 ‘사회적 목적’ 달성을 위한 경제활동을 받아들일 시민의식을 기대히기 어렵다.
따라서 서울시는 지금부터라도 공유경제와 기업, 또는 공동체의 ‘사회적 목적’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일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를 두고 색깔 논쟁을 벌이는 이들까지 설득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현재 대다수 선량한 시민들도 서울시가 주력하는 사회적 경제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사회적 기업 제품의 대형마트 입점도 시민들의 이해가 더 성숙한 뒤로 미루는 편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