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골뱅이 무침
눈물의 골뱅이 무침
  • 한국무역협회 연구위원·혼인강좌 강사
  • 승인 2013.03.29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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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송이 한국무역협회 연구위원·혼인강좌 강사.

한 9년만에 처음으로 골뱅이 무침을 했다.

골뱅이무침에 대한 쓰린 기억 때문에 아마도 도전을 꺼려 왔는지 모른다. 신혼 초에 나름대로 열심히 요리책을 들여다보며 신랑이 좋아한다는 골뱅이무침을 했다. 정성껏 했으나 역시 맛은 역부족이었는지, 한입 맛본 그는 천천히 이렇게 말했었다. “깊은 맛이 없는 것 같아요.”

그 때 나는 내 노력과 정성에도 불구하고 상대에게 만족스러운 선물을 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소리 없이 눈물을 뚝뚝 흘렸었다. 그가 얼마나 당황했겠는가!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나 웃기지만, 그 당시 그 이야길 들으신 시어머니께서는 남편을 엄청 혼내셨다. 주는 대로 먹어야지 왜 그런 소릴 했냐며.

언제나 주는 대로 먹으며 살아온 남편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표현하는 연습을 하기 위해 그런 느낌들을 결혼하고부터 일부러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가 그 골뱅이 무침에 대한 느낌이었던 것이었다. 

오랜만에 밤에 남편과 함께 친구가 선물한 맛있는 쿠키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문제의 골뱅이무침이 다시 화제로 떠올랐다. 남편이 말했다.

“난 이런 정말 쿠키 좋아해요. 그런데, 참. 내가 얼마나 많이 당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사다 주었나요? 길 가다가 생각나면 사오고 그랬는데…. 당신은 내가 좋아하는 걸 기억하고 사준 적이 얼마나 있을까요?”

음…. 이런! 생각해보니 정말 기억이 나질 않는다. 결혼한 지 이제 9년이 되어 가는데 말이다! 나는 남편이 좋아하는 것을 기억했다가 지나는 길에 생각나서 사온 경우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나는 꾸역꾸역 기억을 끄집어내어 말했다.

“음… 김부각이랑 쥐포 같은 거 사온 적이 몇 번 있어요! 꿀땅콩도! 아니, 참, 어제 당신이 웨지 감자 먹고 싶다고 해서 아침에 일부러 해 놓고 나갔는데 안 드셨네요!”

남편은 기가 막혀 하며 쿠키나 계속 먹으란다. 그리고 덧붙인다. “골뱅이 무침 좋아한다고 했는데 그때 (깊은 맛없다고 했던) 이후로 한 번도 안 해주고….”

아, 맞다! 그 눈물의 골뱅이무침! 이젠 그 상처를 뛰어넘을 때도 되었다. 나는 용감하게 골뱅이 통조림을 주문했고, 저녁 퇴근 후 용기를 내어 골뱅이무침을 해냈다. 그가 맛을 보고 뭐라고 말할까? 괜시리 떨린다. “괜찮은 것 같아요.”

휴~ 가슴을 쓸어내리며 나도 한 점 먹어 보았다. 사실 나는 해물을 즐겨 하지 않으므로 매콤 달콤한 양념 맛에 먹을 뿐이다. 아이들도 소면을 맛있게 먹고 저녁식사를 기쁘게 마쳤다.

정말로 나의 솜씨가 나아져서라기보다는, 함께 살아온 9년 동안 그가 나에게 익숙해져서일 수도 있고, 그의 입맛이 더 너그러워져서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참으로 감사하다. 이 모든 것이, 9년 전 흘린 눈물이, 오늘의 웃음이, 모두 다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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