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나이트 인 파리’와 서울의 사람 이야기
‘미드나이트 인 파리’와 서울의 사람 이야기
  • 이창현 서울연구원장
  • 승인 2013.04.12 16: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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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의 도시라고 하면 파리가 떠오른다. 누구나 파리에 가면 낭만적인 분위기 때문에 사랑에 빠진다고 한다. 

파리는 분명 세계에게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서 마법의 매력을 갖고 있다. 파리의 매력을 직접 경험한 사람도 많지만, 많은 사람은 영화를 통해 파리의 매력을 맛보고 그곳에 가고 싶어 한다.

퐁네프의 여인들, 아멜리에, 무랑루즈 그리고 레미제라블을 통해 우리는 파리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파리지앵을 이해한다. 이처럼 영화는 도시를 이해하는 가장 함축적인 미디어이다. 

우디 앨런 감독의 2011년 작 ‘미드나이트 인 파리(Midnight in Paris)’는 파리의 역사와 문화, 그 속의 인물들을 재치 있게 구성하고 있다. 영화는 소설가 길과 약혼녀 이네즈의 파리여행을 소재로 하고 있다.

파리의 낭만을 몸으로 체험하고픈 소설가 길은 약혼녀를 혼자 내버려 두고 파리의 밤거리를 산책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길은 매일 밤 열두 시 종이 울리면, 오래된 푸조 자동차를 타고 1920년대의 파리에 도달한다. 그곳에서 당시에 파리에 살고 있던 전설적인 예술가들과 만나게 된다.

주인공은 파리의 거리를 활보한 어니스트 헤밍웨이, 파블로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T.S. 엘리엇, 앙리 마티스 등의 예술가들을 만나고, 혁명가 트로츠키도 만난다.

영화에 등장하는 파리 사람들의 모습이 이 영화의 스토리를 이어간다. 이것처럼 이 사람들이 파리라는 도시의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스토리텔러이다. 파리는 그자체로 낭만의 도시이지만, 이것은 파리를 살아왔던 인물들의 낭만적 이야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도시의 매력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역사를 영어로 하면 history라고 하듯이 사람들의 이야기가 도시의 역사이다.

서울은 어떠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갖고 있을까?  서울에 살았던 많은 예술가들의 이야기는 얼마나 남아 있는가? 조선시대 인왕산 계곡에 각자 글씨를 새겨놓았던 송시열의 삶, 서촌에 서양식 별장을 지은 벽수산장의 주인 윤덕영의 이야기, 그리고 소설가이자 건축가인 이상의 이야기가 들려오면 좋겠다.

‘소설가 구보씨의 하루’에서 구보 씨가 걸었던 1930년대의 화신상회, 경성역, 조선은행 등으로 이어지는 서울의 거리 이야기도 좋을 것이다. 명동의 멋쟁이 김수영 시인의 이야기, 무교동 세시봉에서의 트윈폴리오 이야기도 빠질 수 없다.

그리고 최불암 씨의 어머니가 운영하였다는 명동 ‘은성다방’ 이야기, 그리고 명동의 황제라고 불렸던 박인환 시인의  ‘세월이 가면’이라는 시도 한번쯤 읊어야 한다.

그리고 삼일로 창고극장에서 줄을 서면서 연극을 보러왔던 관객들의 이야기, 종로의 클래식 음악 감상실 르네상스의 DJ 이야기,  동숭동의 미라보 다리에서 상념에 쌓여있는 대학생이야기도 떠올렸으면 좋겠다.

70년대 긴급 조치시대의 민주인사인 김지하와 김근태 이야기, 1980년대 학생운동의 희생자인 이한열과 박종철의 이야기, 그리고 2000년대 월드컵 키즈의 붉은 악마 이야기 등도 빠질 수 없다. 물론 지난해 2012년 강남스타일을 만들어낸 싸이의 이야기는 가장 인기가 높을 것이다.

사람들의 이야기가 도시를 만들고, 그것이 도시에 생명력을 만들어 낸다.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지 않은 도시 이야기는 없다. 서울의 이야기가 힘이 없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서울의 밤 문화는 찬란하다고 하지만,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등장했었던 수많은 인물의 이야기에 비교하면 서울에 살았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직 옹색하다. 이제까지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만들어낸 서울 사람들의 다채로운 이야기가 더많이 들여왔으면 한다. 이야기가 도시를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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