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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사가 자아낸 바흐의 선율, 조각가 ‘존 배’
2013년 04월 26일 (금) 14:34:42 정민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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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st in a Finite Space(유한한 공간에서 길을 잃다), 2011.

3차원 조각의 전통적인 소재를 다루는 작가들 중 수십 년 동안 한 가지 재료로 오롯이 한 길만을 걷는 작가들이 종종 있다.

돌을 깬다든지 철을 용접한다든지 나무를 깎는다는 것. 똑같은 단순한 노동이 반복되는 작업으로 보일수도 있지만 가만히 지켜보면 공통적인 면을 발견할 수 있다. 재료와 마주보고 작업하며 늘 단 둘이서 대화를 한다는 것이다.

공간의 영역에 속하는 조형예술인 조각은 물질적이고 정적이며 때로는 율동감으로 리듬을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조각 재료의 1차적인 특성만으로 형태를 구성하기보다는 재료의 독립된 형태나 반복을 통하여 무작위적인 혼돈과 정밀함. 이것은 질서에 대응하는 진화해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조소를 전공한 작가라면 1993년 이후 국내에서 4회의 개인전을 가졌던 철조각의 마스터피스 존 배(John Pai, b 1937)의 작품 앞에서 숙연해진 경험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가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것은 1949년 만 12살 되던 무렵이다.

구호활동을 위해 다시 한국으로 가족은 돌아왔고 홀로 남겨진 존 배는 인종차별의 벽을 넘기 위해 각종 운동과 색소폰, 클라리넷을 연주하면서 미술에 대한 남다른 소질을 발휘하였다.

14세에 미국에서 개인전을 가졌고 뛰어난 재능 덕에 뉴욕 프랫대학교에서 4년 장학금을 받으며 산업디자인, 조각을 공부한 뒤 27세에 조각과의 최연소 학과장을 맡았다.

그의 성장과정은 러시아 민요를 들으며 잠들 정도로 늘 음악이 흐르는 집안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졌다. 자연스럽게 그에게 감성의 자양분이 된 것은 음악이었다.

무용에도 관심이 있어 뉴욕 시티 발레와 마사 그레이엄의 모던 댄스, 볼쇼이 발레단을 체험하기도 했으며 자신의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아티스트는 바흐로 꼽는다.

   
▲Body in Question(마음이 몸을 주재한다), 2009.
그는 만났다가 헤어지고 다시 만나기를 반복하는 불교의 윤회사상에 매료됐다. 조형언어의 기본인 ‘선(Line)’을 최소의 단위에서 시작해 복잡한 유기적인 구조로 구축해나가는 것도 같은 범주가 아닐까 생각된다.

섬세한 구조를 창조하기 위해 ‘선’이 실험적이면서도 수학적인 완벽성을 추구해 나가면서 재탄생을 하는 것이다. 보통 1개의 작품을 시작하면 재료선택부터 완성까지 홀로 해내기 때문에 2~3년의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오로지 철사라는 한 가지 재료로 자르고 용접하기를 반복하면 때로는 딱딱한 철사가 불이 닿아 그을음이 검게 변하기도 하고 액체로 변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완성될 드로잉을 거치지 않고 용접 자체를 3차원적 드로잉으로 여기며 작업과정의 끝없는 의식과 무의식적 결정에 의해 ‘길 잃기’를 즐기며 의도치 않는 결과물을 얻기도 한다. 순간적인 선택과 우연의 철사입체드로잉이 되는 것이다.

‘자연 그 자체는 기하학적 구조의 최고봉’이라고 말하는 세계적인 조각가 존 배는 동양적 명상의 정서를 기반으로 음악과 무용의 율동감, 수학적, 건축적 완벽성을 절묘하게 혼합하여 매력을 뽐낸다. 딱딱한 철사의 차가움이 봄날의 흩날리는 꽃잎처럼 잔잔한 음율로 속삭이는 듯하다.



정민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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