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부귀, 존경 등을 상징하는 밤나무
자식, 부귀, 존경 등을 상징하는 밤나무
  • 송홍선 민속식물연구소장
  • 승인 2010.10.2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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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홍선의 ‘풀꽃나무 타령’ 44]
상형문자의 율(栗) 또는 율목(栗木)은 밤나무를 뜻하는 한자 이름에 늘 따라 다닌다.

▲ 밤나무. ⓒ송홍선

청나라 때의 백과사전인 ‘연감류함(淵鑑類函)’에는 ‘여여서율야(與汝芧栗也)’라 하여, 원숭이를 훈련시키는 사람이 ‘원숭이에게 밤(서율)을 나눠준다’는 내용이 있다.

또한 ‘사류합벽(事類合璧)’에는 ‘밤송이에는 3개의 밤알이 있다. 율설(栗揳)은 가운데 것이고, 산율(山栗)은 밤알이 작은 것이며, 서율(芧栗)은 밤알이 아주 작은 것이다’는 내용이 있다.

조선시대의 서거정(徐居正)은 ‘밤나무의 꽃이 피어서 눈이 온 것 같다’라고 읊어, 밤나무의 꽃을 율화(栗花)라 했다. 밤나무 골짜기를 율곡(栗谷)이라 했던 것도 밤나무의 한자명에서 비롯됐다.

밤나무는 한반도 낙랑(樂浪)시대의 옛 무덤에서 몇 알의 열매가 출토된 점으로 미루어 보아 옛날부터 한반도에서 재배됐음을 알 수 있다.

믿을 수 없지만 밤의 크기도 지금보다 컸던 것 같다. 이는 다른 나라의 기록에 나타나는데, 중국의 진나라 ‘삼국지’와 송나라 ‘후한서(後漢書)’란 책에는 마한(馬韓)에서 배만한 밤이 난다고 했으며, 당나라 ‘수서(隋書)’와 ‘북사(北史)’라는 책에는 백제에서 큰 밤이 생산됐다는 기록이 있다.

옛날에는 열매와 단단한 목재를 동시에 얻기 위해 밤나무를 많이 심었던 것 같다.

▲ 밤. ⓒ송홍선

‘경국대전(經國大典)’과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에는 밤나무 식재기록이 있고, ‘속대전(續大典)’에는 ‘밤나무를 심은 농민은 나라에 제공하는 노동력의 부역에서 제외되는 혜택을 받았다’는 내용이 있다.

그리고 ‘산림경제’와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에는 밤을 먹는 방법이 소개됐다. 우리 풍습에는 정월대보름날에 부럼의 하나로 밤을 깨물었으며, 삼색과(三色果)의 하나로 자식과 부귀를 주는 과실이라 하여 결혼, 제사, 의식 때 공물로 썼다.

또한 대례청에 있는 밤을 먹으면 아들을 낳거나 잠잘 때 이를 가는 버릇이 없어지는 것으로 믿었다. 옛날에는 밤을 오래 보관하기 위해 소금물에 처리한 후 모래와 함께 묻어두는 습속이 있었다. 민간에서는 천식이나 기침에 쓰고, 잎은 옻을 옮은 데나 화상에 잘 듣는 것으로 생각했다.

가을이 되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밤나무골로 가서 나무 밑동을 발로 차고 떨어지는 밤을 줍는데, 이 때 다 줍지 못하고 땅에 떨어져 고스란히 남는 밤은 밤나무의 뿌리에 붙어 오래도록 썩지 않고 남는다.

이런 까닭에 밤나무는 근본을 잊어버리지 않는 나무로 알려졌다. 그래서 사당(祠堂)이나 묘(廟)에 두는 위패(位牌)를 만들 때에는 밤나무를 사용했다.

▲ 밤나무. ⓒ송홍선
밤나무에 얽힌 설화로는 원효대사(元曉大師) 이야기가 있다. 대사의 어머니는 꿈에 유성(流星)이 품속에 드는 것을 보고 원효를 뱄다.

어머니는 만삭의 몸으로 경북 경산군의 남불지촌(南佛地村) 밤나무골을 지날 때 산기를 느꼈다. 그때 남편의 옷을 밤나무 가지에 걸어 이슬을 피하고 원효를 낳았다.

‘삼국유사’에서는 순간 오색구름이 땅을 덮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 밤나무를 사라수(娑羅樹), 열매를 사라율(娑羅栗)이라 불렀으며, 주변의 절을 사라사(娑羅寺)라 이름했다. 그리고 남편의 옷을 걸어놓은 행위를 안산하기 위한 주술로 이해했다.

옛 문헌의 ‘장자’에는 사람들이 낮에 밤을 따서 먹고 저녁에 밤나무 위에서 지냈다고 했는데, 유소씨(有巢氏)는 밤나무 위에 집을 짓는 일은 새들이 나무에 집을 짓고 사는 것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했다.

서양에서는 성 시몬의 날, 성 마르틴의 날, 만성절(萬聖節)의 식탁에 올리는 신성한 음식의 하나였다. 유럽의 밤나무는 존경과 친밀감을 표상한다. 괴테나 하이네는 밤나무를 남성의 사랑에 비유했다.

두보는 농가의 풍년을 표현했다. 일본에서는 전쟁터에서 이기고 온 개선용사를 축하할 때 밤을 쓴다.

꽃말은 진심, 사무치는 그리움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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