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首善)의 의미와 서울정신
수선(首善)의 의미와 서울정신
  • 이창현 서울연구원 원장
  • 승인 2013.05.08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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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현 원장의 서울 이야기

서울연구원에서는 방문객들에게 서울의 옛 지도 중 하나인 수선전도(首善全圖) 인쇄본을 기념품으로 증정한다.

수선전도는 조선후기인 1820년대 초 서울의 모습을 세밀하게 그린 도성도로서 김정호가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도의 위쪽에는 외사산 중의 하나인 삼각산이, 아래쪽에는 내사산 중의 하나인 목멱산이 대칭으로 위치하고, 그 밑으로는 한강이 흘러가는 모습이 담겨있는데 요즘의 지도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또 지도를 자세히 보면 서울의 도로와 시설물들 그리고 도성 밖의 마을과 산, 절까지도 잘 나타나있는데, 우리가 현재 부르고 있는 지명의 유래인 답심리(踏深里), 양화정, 홍제원, 연희궁 등의 단어를 발견할 때면 반가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지도의 명칭을 한양전도로 하지 않고 수선전도로 정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수선이라는 이름 속에 수도에 대한 철학과 가치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수선(首善)이라는 단어는 중국의 역사서인 한서(漢書) 유림전(儒林傳)에 등장하는데, 그 전체 문장은 ‘건수선자경사시(建首善自京師始)’로 ‘으뜸가는 선(首善)을 건설함이 서울에서 시작 된다’라고 풀이할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서울에서 먼저 최고의 선을 구현해야한다는 의미를 갖는 것이다.

조선 후기에 서울을 ‘수선’으로 지칭한 것은 당시의 서울이 수도로서 최고의 가치를 존중하도록 기획되고 실행되는 도성이었음을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조선의 수도 한양은 수백 년 왕조를 지켜온 임금이 살고 있었으며, 유교의 이념과 원칙대로 도성을 설계하여 사상과 철학이 바탕이 된 개념 도시였다.

물질적인 풍요와 건축물의 장대함을 따지기 이전에 최고의 가치와 사상이 구현되는 최고의 도시였던 것이다. 생태적 가치를 존중한 풍수지리의 원칙을 따랐음은 물론이고, 유교의 건국이념을 따랐기에 도성 내 사대문의 명칭도 유교적 개념이 하나씩 붙여졌다.

▲수선전도.
성곽의 동쪽 문은 흥인지문이라고 하였고, 서쪽 문은 돈의문, 남쪽 문은 숭례문 그리고 북쪽 문은 숙정문(정자가 지자와 같은 뜻)이라 이름 짓고 가운데 보신각을 더해서 유교의 핵심가치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서울 도성에 구현하였다.

최근 화재 피해로부터 복구된 숭례문의 현판이 다시 걸리는 것을 보면서 이제부터라도 서울에서 ‘예’가 다시 존중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 것도 당초의 도시계획의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지난달에 베이징과의 교류협력을 위해서 베이징에 출장을 다녀왔다. 그때 눈에 띈 것이 거리 곳곳에 쓰여 있는 애국, 창신, 포용, 후덕이라는 네 가지 북경정신이었다. 북경정신은 중국의 국가적 특성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어서 네 가지 정신 중 단연 애국을 제일로 치고 있다.

북경시의 당서기는 북경정신 중 ‘애국’은 정신의 핵심이고 ‘혁신’은 정신의 정화이며 ‘포용’은 정신의 특징이고 ‘후덕’은 정신의 품질이라고 표현하였다고 한다.

북경처럼 서울의 거리 곳곳에 서울정신을 구호처럼 써넣기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북경정신을 보면서 서울이 가진 진정한 가치와 철학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도시의 정신을 시대적, 문화적 산물이라고 보았을 때, 서울은 북경정신과는 차별적인 가치와 내용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서울은 과연 어떤 서울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지난 반세기동안 서울의 시민들은 급속한 도시의 양적 팽창과 성장의 패러다임을 쫓아 살아왔다. 서구의 도시와 물량적으로 비교하여 최고와 최대를 외쳐왔고, 행복의 척도를 몇 평짜리 아파트에 사느냐로 설정했었다.

서울의 미래는 서울의 현재와는 다른 방향을 가져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서울의 정신을 새롭게 수립하는 것은 서울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핵심적인 요소이다. 서울정신을 찾아보려는 노력의 시작으로 ‘수선전도’에 담긴 首善의 의미를 다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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