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감독과 사직공원?
홍상수 감독과 사직공원?
  • 이창현 서울연구원 원장
  • 승인 2013.05.16 17:1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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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현 원장의 서울 이야기

홍상수 감독이 만든 영화의 안내대로 사직공원, 아니 사직단을 찾아갔다. 영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의 주인공인 해원이 그랬던 것처럼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는 나무담장을 살짝 밀고 사직단에 발을 들여놓았다.

영화 속 남자주인공인 성준이 그랬던 것처럼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은데…”라는 말을 하면서 그 상징적 공간을 따라 들어간 것이다.

나는 이제까지 버스 안에서 들리는 안내 방송을 통해, 혹은 사직터널 위에 위치한 사회과학도서관으로 가는 길에 보이는 이정표를 통해 사직공원을 기억해왔다.

그랬기에 사직단을 터널에 이르는 막다른 곳에 있는 공원쯤으로만 여겼지, 한 나라의 임금이 땅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신성한 장소라는 본질적 의미로 기억하지는 못했다. 사직단이 지닌 역사와 가치를 잊은 채 어느 새 그곳을 어느 체육공원쯤으로만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태조 이성계는 조선을 개국하고 도읍을 개성에서 한양으로 천도한 이듬해인 1395년에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좌묘우사(左廟右社)의 원칙에 따라 궁궐의 왼쪽에는 종묘를 오른쪽에는 사직단을 만들었다.

중국의 천단이 정확히 남북축선에 놓여있다면 우리의 사직단은 인왕산의 산세와 지형에 부합하도록 조금 동쪽으로 치우쳐있다. 한양의 전체적인 풍수지리에 따라 사직단을 조화시킨 것이다.

농경사회에서 국토와 오곡은 경제행위의 원천이었기에 토지신인 국사신(國社神)과 곡물신인 국직신(國稷神)에 제사를 지내는 일은 범국가적인 제례행사였고, 사직단은 그 제례행사를 위한 상징적 공간이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포스터.
요즘으로 말하자면 산업경제의 번영과 수출증대를 염원하는 국가적 의례의 장소였던 것이다. 그렇기에 한양도성의 가장 핵심적인 인왕산 밑에 자리를 잡도록 했을 것이다. 

이러한 의미를 지닌 사직단이 일본의 지배하에 경성도시계획으로 인해 축소되고 왜곡되어 현재에 이르렀다.
 
사직단의 제례가 1908년 일제에 의해 강제 폐지된 것도 모자라 1922년에는 사직단 자체가 시민공원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서울시에서 장충단공원, 효창공원이 만들어진 것도 같은 시기였으니 조선총독부가 왕실에서 신성시하는 공간을 의도적으로 격하시켰음을 알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해방 이후에도 그 위상이 회복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1962년에는 사직단 정문은 자동차길 확장으로 옮겨졌고, 1970년대에는 사직단 바로 위 인왕산 기슭에 종로도서관과 동사무소, 파출소가 줄줄이 들어선 데 이어 서쪽에는 수영장까지 지어졌다.

조선왕조 500년, 더 올라가 고려, 신라 그리고 고구려 때부터 이어져왔던 사직단이라는 상징적 제례 공간이 축소되면서 급기야는 우리의 기억속에서도 사라지고 말았다. 신성시되어야할 국가적 제례의 장소가 국민체육진흥을 위한 장소나 공공기관 건물을 짓기 위한 빈 공간으로 간주되어 온 것이다.

해방 이후에도 국가적으로 사직단에 대한 국가 상징성에 관심을 두지 못하였고, 서울시의 도시계획에서도 사직단의 원형을 지켜내려는 노력도 크지 못했다는 반성과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늦게나마 2007년에 사직단의 이름을 다시 쓰게 되었지만, 당초의 공간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많은 조선시대 역사드라마 속에서 신하들이 왕에게 '종묘사직을 지켜야한다'라고 간언하는 모습을 수차례 볼 수 있었지만, 정작 우리는 그 공간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역사적인 제례공간으로서 사직단을 제대로 복원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영화 속에 나왔던 ‘사직동 그 가게’에 가서 차 한 잔하면서 사직단의 모습을 제대로 상상해보고 싶다.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을 보면서, 나는 “누구의 공간도 아닌 사직단”의 현재 모습을 떠올린다.

▲겸재 정선이 그린 사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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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양 2014-07-23 13:29:37
북경의 천단과 서울의 사직단을 비교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북경에도 사직단이 있는데 천단과 비교하는 것은 맞지 않죠. 북경 천단은 서울 환구단과 비교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