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점심에 정말 오랜만에 반가운 분을 만났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13년만일 것이다. 대학원 졸업 후 처음 뵌 것 같다. 멀리서 오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약속을 취소하고 약속장소로 나갔는데, 그분은 예정보다 10분 일찍 도착해 자리를 잡고 앉아 계셨다. 아이코…! 죄송해라. 언제나 가까이 있는 사람이 늦게 마련인가 보다. 나는 처음 가보는 곳이었는데, 그 동네의 유명한 맛집인지 길게 늘어서 있는 사람들을 헤치고 그분께 달려갔다.
그 사이 내가 다른 곳에서 파견근무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 둘을 낳아 기르며 격변의 세월을 겪었듯이, 그 분 역시 그러신 것 같았다. 최근 연결된 페이스북으로 간혹 사진과 글을 보면서 그분의 근황을 아주 조금씩 추측해보긴 했었지만, 그간의 이야기를 들으니 조각난 퍼즐들이 맞추어지면서 그야말로 스펙터클 어드벤처가 따로 없었다. 맛있는 제육볶음을 앞에 놓고 먹고 있는 도중, 그 분의 삶에서 가장 가슴 아팠던 경험을 듣고는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는데 마음을 추슬러 이렇게 말씀 드렸다.
"예전에 저는 연세가 많으신 분들에 대해서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우리에게 당신들이 살아온 방식을 강요하지 마세요!'라는 식의 태도 말이지요. 특히 자수성가하신 어르신들은 자신의 것만이 옳다고 주장하시며 강요하시는 경우가 많아서 제가 더 그랬나 봐요. 본인이 그렇게 살아와서 성공했으니, 너희들도 이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저희에게 강요하시는 것처럼 느껴져서 저는 항상 그런 어르신들을 불편해했어요.
그런데 제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드는 생각은, 어르신들은 그저 그 세월을 살아오신 것만으로도 그냥 존경 받을만하다는 것이었어요. 배웠든 못 배웠든 간에, 성공했든 그러지 못 했든 간에, 성격이 어떻든지 간에, 그냥 그 세월을 살아내면서 수많은 아픔과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어내고 견뎌내신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존경스럽더라고요…! 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그랬다. 그런 깊은 아픔을 직면하고, 견디어내고, 또 묵묵히 자신의 삶을 하루 하루 살아가는 모든 분들은, 그분들의 머리에 늘어난 하얀 머리카락 수만큼, 그분들의 얼굴에 패인 주름만큼, 존경 받을 만한 분들이었다. 어른을 공경해야 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를 점점 더 깊이 깨달아가고 있는 것 같다.
오래 전부터 잡힌 약속까지 취소하면서 만나 다시 13년 간의 세월을 끄집어내어 반추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잠시 고민했던 것이 너무나 민망하고 부끄러울 정도로, 그분과 함께 한 그 1 시간 동안 나는 삶에 대해 감사하며 함께 많이 웃을 수 있었다. 참으로 반갑고 감사하고 기쁜 시간이었다. 새로운 눈으로 다시 보니 그분은 철부지처럼 덜렁대는 어린 제자를 기다려주실 줄 아는 우아한 분이셨고, 묵묵하고 꾸준히, 천천히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조용히 존재하는 한 사람이었다.
감사하다. 내게 그분의 존재를 다시 연결시켜 준 친구에도 고마운 마음이 든다. 그분에게 세워진 하늘의 뜻이 모두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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