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전 미결사건 재수사하는 프랑스 검찰
26년 전 미결사건 재수사하는 프랑스 검찰
  • 백연주
  • 승인 2010.11.12 08: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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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연주의 ‘프랑스 엿보기’]

약 4년간 괴한으로부터 정확한 이유도 모른 채 규칙적으로 욕설과 비난이 담긴 협박전화를 받아오던 크리스틴(Christine Villemin)과 쟝마리 빌망(Jean Marie Villemin)부부.

1984년 10월16일 오후 5시 경, 부부의 자택으로 어김없이 걸려온 한 통의 전화는 "조심하라"라는 말만을 남긴채 끊어졌다. 알 수 없는 불길함에 두려워하던 부부는 네 살 배기 아들 그레고리(Gregory Villemin)가 집에서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 그레고리 사망 당시 장례식 현장사진.


즉시 경찰에 신고한 부부는 온 동네를 샅샅이 뒤지며 아들의 이름을 애타게 불렀고 저녁 9시15분, 경찰은 부부의 자택으로부터 약 7km 떨어진 한적한 강가에서 손발이 묶인 채 사망한 그레고리의 시신을 찾아냈다. 

미결 사건으로 남은 그레고리의 죽음
사건 다음 날, 부부는 발송자를 확인할 수 없는 익명의 편지를 한 통 받았다. “부디 슬픔으로 괴로워 하길 바란다. 당신들은 돈으로도 아들을 돌아오게 할 수 없다. 난 이렇게 복수를 했다. – B.L”

그레고리의 납치살해를 또렷하게 명시하고 있는 이 편지는 경찰에 넘겨졌고, 약 한달간의 수사 끝에 경찰은 그레고리의 삼촌뻘인 베르나르 라로슈(Bernard Laroche)를 범인으로 지목한다.

베르나르의 이름 알파벳이 부부에게 도착한 편지의 마지막에 기록된 이니셜 B.L과 동일한데다, 증인 중 한 명이 그가 사건 당일에 그레고리와 함께 강가로 가는 모습을 보았다는 진술을 확보해 경찰은 그를 구속한다. 그러나 경찰은 이렇다 할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였고, 3개월 후 법원은 베르나르 라로슈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석방한다.

▲ 1차 범인으로 지목되어 체포되었던 그레고리 부친의 사촌인 베르나르 라로슈 사진.

그러자 그레고리의 아버지 쟝마리 빌망은 언론에 “그를 보는 순간, 내 손으로 죽일 것이다”라고 공공연히 밝혔다. 이에 베르나르의 부인인 마리 앙쥬 라로슈(Marie Ange Laroche)는 석방된 남편이 보복을 당할 것이 걱정스러워 집 주변에 경찰을 배치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공포의 나날을 보내던 베르나르는 결국 일을 마치고 퇴근하던중 쟝마리 빌망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한다.

의혹만 늘어가던 그레고리 살해사건은 빌망 부부의 자택을 현장수색하던 경찰이 창고에서 사체발견 당시 그레고리의 손발을 묶었던 것과 동일한 노끈을 발견하면서 미궁으로 빠진다. 부부를 집중적으로 수사하던 경찰은 사건 당일 그레고리의 엄마 크리스틴이 편지를 발송하기 위해 인근 우체국에 들렀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녀를 불구속 입건하지만 또다시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무죄 석방된다.

결국 경찰은 1993년, 그레고리 사건을 미결로 남긴 채 수사를 종결한다. 경찰은 베르나르를 살해한 쟝마리 빌망에 대해 5년형을 선고하지만, 법원은 2주 뒤 아들의 사망에 대한 정신적인 충격에 이은 감정적 사고 등을 이유로 그를 집으로 돌려보낸다.

아들을 잃고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던 빌망 부부는 2000년, 다시 한 번 사건을 수사해달라며 검찰에 의뢰한다. 1980년대에 비해 놀랍게 발전한 과학수사의 도움을 받고자 한 것이다.

사건 당일 날아왔던 편지에 부착된 우표 반쪽에 희미하게 남아있던 침을 통해 DNA검사가 시작되었다. 드디어 그레고리를 살해한 범인이 밝혀질 거라는 프랑스인들의 기대도 잠시, DNA파악이 불가능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2년 후인 2002년, 얽히고설킨 이 사건으로 프랑스 정부는 지갑을 열어야만 했다. 살해당할 가능성이 있는 남편을 보호해 달라는 요청을 거부한 정부는 숨진 베르나르의 부인에게 약 1억원에 달하는 보상금을, 몇 해에 걸친 수사에도 그레고리를 살해한 범인을 잡지 못한 데에 대해 빌망 부부에게 각 4천만원씩의 위로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사건은 종결되는 듯 보였다.

▲ 2009년, 그레고리 사건을 1면에 다룬 현지신문.

재수사하는 26년 전 사건
하지만 2008년, 프랑스 검찰은 미결 사건들을 재수사하기로 결정한다. 2000년에 시행했던 우표의 DNA를 다시 검사한 끝에 남성과 여성의 DNA가 나왔다. 검찰은 “발견된 DNA는 그레고리의 부모인 빌망 부부의 것은 아니며 보다 자세한 조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가운데 사망한 베르나르의 부인은 “크리스틴과 쟝마리 부부가 필요하다면 사망한 남편 시신의 DNA를 검사하는데에 협력하겠다”고 나서며, 다시 한번 남편의 무죄를 자신했다.

아무 죄도 없이 살해당한 어린 그레고리를 위해 26년간 싸워온 부부. 2010년 10월, 이 부부에게 새로운 희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쟝마리 베네(Jean Marie Beney) 대검찰관은 수사 도중 당시 그레고리가 입고 있던 바지의 밑단 부분에서 아이 혹은 부모의 것이 아닌 머리카락을 발견했다. 그는 이를 통해 직접적인 범인, 또는 결정적인 증인 등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며, 범인이 그레고리의 팔다리를 묶는데 사용했던 노끈을 중심으로 지문채취와 신원파악, 제작장소 등을 곧 밝힐 것이라고 공식발표했다.

“그레고리가 살아있었다면 오늘이 서른살 되는 날이다. 너무 보고싶고 사랑한다” -빌망부부-

오로지 자식을 잃은 슬픔으로 26년 세월을 보낸 이들에게 과연 2010년이 긴 릴레이의 끝이 될 수 있을지, 작은 희망을 가져본다.

또 하나의 바람이 있다면 대한민국에서도 수많은 미결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끝없는 노력이 이어져, 억울한 고통을 받는 이들이 없어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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