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심판론에 불씨 던진 ‘촛불 반성’ 발언
정권심판론에 불씨 던진 ‘촛불 반성’ 발언
  • 백병규 시사평론가
  • 승인 2010.05.13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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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병규의 시사돋보기]

불씨는 엉뚱한 데서 던져졌다.

“촛불시위 2년이 지났다. 많은 억측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음에도 당시 참여했던 지식인과 의학계 인사 어느 누구도 반성하는 사람이 없다.”

11일 국무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한 말이다. <조선일보>의 ‘촛불기획’을 칭찬하면서, 왜 촛불시위에 불을 붙였던 지식인들이나, 의학계 인사들은 반성하는 사람이 없느냐는 질책이었다. 이른바 ‘촛불 반성’ 발언이다.

‘촛불 반성’, 시민들에게 한 말 아니다?

역풍이 일자, 청와대는 긴급 진화에 나섰다. 김은혜 청와대 대변인은 언론이 ‘곡학아세’하고 있다고 언론 탓을 했다. 이 대통령은 ‘지식인’과 ‘의학계 인사’를 지칭해 한 말인데, 신문과 인터넷 언론들이 마치 촛불시위에 참여했던 시민들에게 대통령이 반성하라고 말한 것처럼 왜곡했다는 것이다.

그 말이 그 말이다. 지식인이나, 전문가들이 반성하지 않는다고 질타했다면, 멋모르고(?) 참석한 일반시민들이야 굳이 언급할 이유나 있었겠는가.

당장 촛불시민들의 반감이 거세다. 2년 전 촛불정국 당시 두 차례나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청와대 뒷산에서 ‘아침이슬’을 불렀다던 것은 그 어느 때 일이며, 그때 그 대통령은 어디 갔냐는 말들이 쏟아진다. 이 대통령으로서는 본의 아니게 침잠해있던 ‘촛불감성’에 불씨를 던진 꼴이 됐다.

그 파장이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다. 이번 6ㆍ2지방선거에 미칠 직접적인 영향을 헤아려 보는 것도 지금으로서는 무망한 일이다.

분명한 것은 이 대통령의 이 발언이 MB정권의 본성과 행태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세종시 언약을 손바닥 뒤집듯 파기한 것이나, 대운하를 포기한다 해놓고 ‘4대강’을 강행하고 있는 것이나, 부자 감세를 단행해놓곤 친서민 실용정책을 펴겠다고 하는 것 등 일방적이며, 표리부동한 본성을 이처럼 간단명료하게 드러내준 발언도 없을 것이다.

6ㆍ2지방선거는 참으로 밋밋한 선거가 될 뻔했다. 지금까지 추세로 보자면 그렇다. 최대의 승부처인 수도권에서 민주당은 정권심판론으로 승부를 볼 작정이었지만, 그 불이 붙지 않아 어려운 판세였다.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정권심판 여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야당 후보에 대한 지지율은 그에 훨씬 못 미치고 있다. 야권연합의 무산, 특색 없는 공천 등 야당진영의 활력이 별 볼 일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천안함 사건 등으로 선거 분위기가 달아오르지 않고, 다른 선거 쟁점들이 희석된 탓도 크다. 여기에 이 대통령이 휘발성 높은 불씨를 툭 던진 셈이다.

느닷없이 던져진 불씨는 아니다. 전조는 많았다.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검찰의 무리한 수사와 기소, 선거관리위원회의 도를 넘는 규제와 단속, 경찰의 진보 교육감 후보 사찰과 보수성향 후보 지원을 위한 정보활동 지시, 조전혁 의원을 비롯한 한나라당 의원들의 집단적인 법원 판결 무시 행태, KBS의 편파적인 TV토론 논란 등 시민들을 자극할 요소들이 다분했다. 이대통령의 ‘촛불 반성’ 발언은 그 정점을 찍었다.

TV토론 거부하는 한나라당 후보들

수도권 한나라당 후보들의 처신 또한 시민적 감수성을 자극하고 있다. 한나라당 안상수 인천시장 후보는 TV토론을 처음부터 기피했다.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도 예정됐던 TV토론을 야당 후보 단일화 추진을 이유로 돌연 거부했다. 현역 단체장들로 지지도에서 앞서 나가고 있는 이들로서는 가급적 TV토론을 하지 않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을 했음직도 하다.

그러나 현실을 앞세운 정치적 셈법은 곧잘 빗나가곤 한다. 특히 쿨한 것에 목매다는 젊은 세대들에겐 더 그렇다. 정치적인 셈법으로 보더라도 민주당 한명숙 서울시장 후보는 덕분에 당내 경선과정에서 이계안 후보와의 TV토론 기피로 안게 된 정치적 부담을 상당부분 덜 수 있게 됐다.

마침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이 경기도지사 후보 단일화를 이뤘다. 야권으로서는 수도권에서 분위기의 반전을 노려볼 수 있게 됐다. 결과만 놓고 보자면 민주당은 실익도 없이 먼 길을 돌아온 셈이다. 처음부터 ‘5+4 연합’에 더 과감하게 양보했더라면 훨씬 좋은 모양새가 됐을 터이다. 이 또한 당장의 정치적 이해 앞에서 한 치 앞을 못 내다 본 ‘짧은 셈법’ 탓이 크다.

13일 후보 등록을 시작으로 6ㆍ2지방선거는 본격적인 선거전에 돌입한다. 2주 남짓한 선거운동 기간, 또 어떤 ‘불씨’가 던져질지, 누가 어떤 ‘바람’을 불러일으킬지, 혹은 눈앞의 ‘짧은 셈법’으로 자멸의 길로 들어설지, 각각 눈여겨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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