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초 꽃 상징, ‘아름다움’은 동서양이 비슷해
난초 꽃 상징, ‘아름다움’은 동서양이 비슷해
  • 송홍선 민속식물연구소장
  • 승인 2010.12.13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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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홍선의 ‘풀꽃나무 타령’ 57]

▲ 난초(서양란), 팔레높시스 [송홍선]
난초는 사군자의 하나로 예로부터 시와 그림의 소재로 많이 등장하고 있다. 문인화로서 묵란화가 한반도에 도입된 것은 한반도에서 난초가 재배되기 시작한 고려말기로 추정되고 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는 조선초 강세황의 ‘필란도’가 있다. 이밖에 김정희, 이하응, 김응원, 민영익 등은 묵란화의 대가들이다.

난초 소재의 시를 남긴 사람으로는 김부식, 김극기, 이규보, 정몽주, 정도전, 권근, 이숭인, 최경창, 신위 등이 있다.

한시에서는 난조(蘭藻; 아름다운 글), 난질(蘭質; 아름다운 인성 바탕), 난궁(蘭宮; 아름다운 궁전) 등의 용어를 통상적으로 활용해 난초의 자태를 아름다운 것, 아름다운 여인의 상징으로 삼았다.

▲ 타래란초 [송홍선]
또한 자손의 번창과 관련 있는 것으로 이해돼 경기도 지방에서는 ‘난초꽃이 번창하면 그 집에 식구가 늘어난다’는 속신이 전하고, 충청북도지방에는 ‘꿈에 난초가 대나무 위에 나면 자손이 번창하고, 난초꽃이 피면 미인을 낳는다’는 속신이 전한다.

난초는 중국에서 그 문화와 정신적 가치가 부여돼 한반도와 일본 등으로 전파됐기 때문에, 난초에 대한 문화 상징적 관념은 동아시아의 나라가 거의 공통적이다.
 
향기로운 식물로 사랑을 받으면서 아름다운 것의 한 표본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초사(楚辭)’에는 ‘가을 난초를 꿰어 패물로 찬다’고 했다. 이때의 가을 난초는 군자와 같은 인격체의 상징으로 쓰였다.

난초는 불모지에 생명을 수태시키고 생식력을 도우며, 남성(아버지)의 자격을 보증한다. 일반적으로 난초는 남성을 상징하지만 그 꽃의 아름다운 자태는 여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중국의 ‘회남자(淮南子)’에는 남성이 난초를 심으면 향기를 풍기지 않는다고 했다. 그 까닭은 남성과 난초가 서로 정이 통하는 사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난초를 여성만의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서양에서도 난초의 아름다움은 여성을 표상하는 경우가 있다.

난초 꽃의 정신적인 완성이나 여성과 순결을 상징하는 것은 서양에서도 동양에서와 마찬가지이다.

한편, 한반도의 탄생화 유래담은 믿거나 말거나의 이야기이지만, 그래도 상징적 의미는 있는 것 같다.

풍란은 지리산의 산신인 성모신 마야고(摩耶姑) 신화에서 변신, 재생을 표상하고 있다.

▲ 한란 [송홍선]
마야고는 사랑하는 반야를 기다리다 그녀가 나타나지 않자 만들어준 옷을 갈가리 찢어서 버렸다. 마야고가 찢어서 버린 옷의 실오라기들은 풍란으로 자라나 지리산에 서식하게 됐다.

꽃이 아름답고 향기가 짙은 한란의 탄생화 유래담도 있다. 옛날 제주도의 산골에 효자가 있었다. 그는 아버지의 병을 고치려고 갖은 고생을 다하는 효자였다.

그는 어느 날 꿈속에 산신령이 나타나 ‘뒷산의 꽃을 술에 열흘 동안 담갔다가 하루에 한잔씩 마시게 하면 낫는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효자는 한겨울인데도 마음을 굳게 먹고 산길을 나섰다.

눈 쌓인 숲속을 거닐던 중 가느다란 잎사귀의 꽃자루에서 향기롭게 피어난 꽃을 발견했다. 효자는 바로 이 꽃을 따다가 산신령이 시키는 대로 숲에 담가 드렸더니 아버지의 병이 나았다.

사람들은 그 후 이 꽃이 한겨울에 핀다고 해서 한란(寒蘭)이라 이름지었다.

필자는 지난 1990년의 어느 날, 서귀포 일원에서 식물의 생태를 조사하던 중 우연히 야생 한란을 보았으나 꽃이 피어있는 상태가 아니라서 아쉬웠던 적이 있다.

그래서 이듬해에 꽃이 핀 야생한란을 관찰하려고 그곳을 다시 찾아갔으나 그 곳에는 한란이 없었다.

어느새 도채꾼들이 캐가고 말았던 것이다. 그 후에는 고고한 모습의 야생한란을 보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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