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비아니, 또는 ‘서울 불고기’에 대한 신화 ①
너비아니, 또는 ‘서울 불고기’에 대한 신화 ①
  • 황교익 / 맛칼럼니스트
  • 승인 2010.05.14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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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익의 ‘서울음식 먹어본 지 30년’ 6]

이 글을 연재하면서 편집자로부터 은근히 압력을 받는 부분이 있다. “‘서울 음식’이라 할 수 있는 게 그렇게도 없느냐. 그런 음식도 좀 보여주면 좋겠다”는 사인이다.  

의도는 알겠지만 내 눈에 그게 띄어야 쓸 것이 아닌가. 이 즈음에 이러면 “서울 음식이 왜 없어. 너비아니 있잖아. 불고기의 전신인 너비아니!” 하고 덤빌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음식 관련 책자 등에서 “너비아니란, 궁중과 서울의 양반집에서 쓰던 말로 고기를 넓게 저몄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고기구이는 ‘맥적(貊炙)’에서 유래된다” 같은 글을 익히 봐왔기 때문일 것이다. 

맥적이 우리 민족 음식이라는 억측

▲ 고기를 구워 먹고 있는 사람들을 그린 19세기 말의 한 풍속화. 저 번철 위의 고기를 불고기라 할 수 있을까?
여기서 잠시, 서울을 떠나 불고기에 대해 언급해보자. 일단 불고기가 우리나라 대표 음식이 맞는가부터 살펴보자는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불고기가 우리 민족의 오랜 전통음식이라는 근거로 ‘맥적’을 들먹인다. 1906년 최남선이 <고사통>(故事通)에 그리 적어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 글은 이렇다. 

“중국 진(晉)나라 때의 책 <수신기(搜神記)>를 보면 ‘지금 태시(太始) 이래로 이민족의 음식인 강자(羌煮)와 맥적(貊炙)을 매우 귀하게 안다. 그래서 중요한 연회에는 반드시 맥적을 내놓는다. 이것은 바로 융적(戎狄)이 쳐들어 올 징조이다’라고 경계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맥적에는 대맥(大貊)과 소맥(小貊)이 있었으며, 한대(漢代)에서 이것을 즐겨 맥적을 중심으로 차린 연회를 맥반(貊盤)이라 하였다. 강(羌)은 서북쪽의 유목인을 칭하는 것이고, 맥(貊)은 동북에 있는 부여인과 고구려인을 칭한다. 즉 강자(羌煮)는 몽골의 고기 요리이고, 맥적(貊炙)은 우리나라 북쪽에서 수렵생활을 하면서 개발한 고기구이이다.” 

우리 땅의 옛 문물에 대한 정보는 사실 최남선이 정리해놓은 것 이상의 것이 없다.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그의 말은 ‘성경’이다.

그런데 나는 그의 글에 약간 의심이 갔다. 고기구이 정도야 아시아 대륙의 여러 민족이 다 먹던 음식인데 그걸 굳이 우리 민족의 음식이라고 중국인이 적어놓았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수신기> 원문을 찾아서 봤다. 

“호상(胡床), 맥반(貊槃)은 적족(翟族)이라는 민족이 쓰는 용기의 이름이고 강자(羌煮), 맥자(貊炙)는 적족이 먹는 음식의 이름이다. 그런데 진무제 태시 연간부터 중원지구에는 이런 도구와 음식이 유행되었다. 귀족들과 부자들의 집에는 모두 그런 용기들을 갖추어 놓고 희사 때 귀빈들이 오면 우선 그런 용기와 음식을 상 위에 내놓는다. 이것은 서융(西戎)과 북적(北翟)이 중원 지역을 침범할 징조를 미리 보인 것이다.” 

최남선이 봤다는 <수신기>에는 맥적(‘맥자’라고도 읽는다)에 대해 적족의 음식이라고 적어두고 있다. 뒤에는 더 구체적으로 (서)융과 (북)적이라는 북방민족이 저 음식의 주인공이라고 확인해주고 있다. 음식 이름에 맥(貊)이 붙었다고 우리 민족인 맥족의 음식이라 한 최남선의 추리는 내가 보기에 억측으로 보인다. 

최남선이 인용한 <수신기>는 신뢰할 만한가? 

여기에 더해 <수신기>라는 책의 성격이 역사서가 아니라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 동진시대, 그러니까 4세기경 간보(干寶)라는 중국인이 편찬한 설화집이다. 이 책은 온통 귀신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쉽게 말해 ‘전설의 고향’ 같은 이야기를 모아놓은 책이다. 

전통이 없으면 조작을 해서라도 전통을 만들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있다. 여기까지는 불고기에 대한 조작된 전통 이야기이고, 다음에는 너비아니가 과연 ‘서울 불고기’인가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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