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시대엔 경운궁만 운영
대한제국 시대엔 경운궁만 운영
  • 나각순 서울시사편찬위 연구간사
  • 승인 2010.06.08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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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각순의 ‘서울 문화유산 둘러보기’ 9] 서울 궁궐②

서울의 궁궐 자리의 지리적 특성은 장풍득수(藏風得水)의 명당에 위치한다는 것이다. 서울은 내사산(주산ㆍ안산ㆍ좌청룡ㆍ우백호)과 외사산(조산ㆍ진산ㆍ외좌청룡ㆍ외우백호), 주산과 안산, 내명당수(청계천)와 외명당수(한강), 백두산을 조종산으로 하는 산줄기의 보호를 받고 있다. 이는 오늘날의 인문지리와 유사한 것으로, 당시에는 자연과학이었고 도참사상과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서울의 법궁을 중심으로 좌묘우사, 즉 좌(동쪽)에는 종묘, 우(서쪽)에는 사직을 두어 도성의 기본 도시시설을 설치했다. 그리고 서울의 5대 궁궐은 산 앞에 위치하게 된다. 경복궁은 백악 앞에, 동궐 즉 창덕궁과 창경궁은 응봉 앞에 위치한다. 그리고 서궐인 경희궁은 인왕산 앞에, 서궁인 경운궁(덕수궁)은 인왕산의 끝자락에 위치했다.

▲ 서울을 지켜주는 주산인 북악. ⓒ나각순

궁궐의 구분, 내전과 외전

한편, 궁궐은 크게 내전과 외전으로 구분된다. 내전은 왕과 왕비의 공식 활동과 일상적인 생활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대전(왕의 주거공간) 중에서도 연거지소(燕居之所, 가장 많은 시간 보내는 곳), 편전(주요 신료들과 공식적인 회의), 중궁전(왕비의 활동공간으로 궁궐의 가장 중앙부)으로 구성되어 있다.

외전은 왕이 공식적으로 신하들을 만나 의식ㆍ연회 등 행사를 치르는 공간으로, 정전(법전, 그 뜰이 조정), 동궁(세자의 활동공간, 떠오르는 해라는 뜻에서 동쪽에 위치), 생활 주거공간(궁궐 가족들의 생활공간, 내전의 뒤편), 후원(원유, 금원, 휴식공간, 과거시험 등 실시)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궐내각사로 빈청(賓廳, 정승ㆍ판서 등의 회의 공간), 정청(政廳, 이조와 병조 관원들의 인사업무 공간), 대청(臺廳, 사헌부와 사간원 언관들의 언론 활동 논의 등 준비 공간), 승정원(承政院, 왕명 출납을 담당하는 승지들의 관서), 홍문관(弘文館, 학문을 도야하여 왕의 주문에 대응하고 왕과 함께 경전과 역사책으로 토론하는 공간), 예문관(藝文館, 외교문서 작성 관아), 춘추관(春秋館, 실록편찬 등 역사기록 담당), 내반원(내시 근무 공간) 등이 있었다.

조선시대 궁궐은 법궁과 이궁의 양궐체제로 운영됐다. 즉 조선 전기에는 경복궁과 창덕궁ㆍ창경궁 체제, 이어 광해군 때 창덕궁이 법궁이 됨에 따라 정릉동 행궁을 경운궁으로 명명하고, 사직단 뒤편에 인경궁을 건조했으며, 인조반정 후 경덕궁(경희궁)을 이궁으로 했다. 고종 때 경복궁이 중건되면서 경복궁과 창덕궁 체제로, 대한제국 시대는 경운궁 단궐체제로 운영됐다.

▲ 창경궁 옥천교 명정문. ⓒ나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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