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함께 돌자 서울 한바퀴⑩ 종로 서촌
다함께 돌자 서울 한바퀴⑩ 종로 서촌
  • 이인우 기자
  • 승인 2012.12.14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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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기예 높은 장인들 모여 살던 예술인 마을, 공방 카페 줄지어 옛 전통 되살리기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동네는 어디일까. 바로 우리나라 권부의 심장이라는 청와대 바로 아래, 청운동과 효자동, 통의동, 옥인동 등이 몰려 있는 서촌(西村)이다.

이 동네는 그동안 정부의 규제로 광폭한 개발에서 한 걸음 비켜나 있었다. 서촌 주민들은 때문에 다른 어느 지역 주민들보다 뚜렷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 이들이야말로 ‘오리지널’ 서울 토박이 기질을 생활 속에 보여주는 서울의 주역이다.

이런 서촌에 나그네들의 발길이 부쩍 잦아지고 있다. 북촌이나 삼청동과는 또 다른 서울의 진면목을 찾아온 시민들이다. 경복궁역에서 내려 효자동쪽으로 걸어 들어가면 그동안 알지 못했던 서울의 속살을 볼 수 있다.

경복궁역 3번 출구로 나가면 효자동길이다. 몇 걸음 더 가면 09번 마을버스가 다가온다. 전형적인 산동네 마을버스다. 좌석은 17개 정도. 시청까지 나갔다가 돌아와 효자동 길에서 좌회전, 통의동을 거쳐 옥인동 종점까지 올라간다.

이 동네 주민들의 승용차는 마을버스와 마주치면 얼른 옆에 세운다. 덕분에 버스를 타고 가는 주민들은 금세 종점까지 올라갈 수 있다. 차 두 대가 엇갈리기 버거운 좁은 길이다.

길 양쪽으로는 새로 지은 연립주택과 옛 개량식 한옥, 단층 슬라브 점포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이곳이 경복궁 동쪽에 있는 북촌 한옥마을과 대비되는 ‘서촌’이다.

○한 가닥 하는 도성 장인들 다 모였네

▲ 인왕산.
옛 서울은 벼슬아치들이 모여 살던 북촌과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 선비들과 무반, 상인들의 동네 남촌, 그리고 서촌이 있었다.

경복궁의 서쪽에 붙어 있는 서촌은 궁중 화원이나 대목장, 소목장을 비롯해 공예품 등을 만들던 장인, 역관, 의관 등 중인들이 모여 살았다. 지금으로 치면 예술인 마을인 셈이다.

겸재 정선과 추사 김정희도 한 때 서촌에 살며 많은 작품을 남겼다. 겸재의 인왕제색도는 서촌에서 바라본 인왕산의 모습을 그린 걸작이다.

▲ 지난 1월 1일 새해 소망을 간직한 시민들이 인왕산 정상에서 일출을 기다리고 있다.
또 한 쪽에는 궁궐로 출퇴근하던 환관들의 집도 많았다. 가족이 없는 환관들의 집은 고작 두어 칸에 4~5평 남짓했다고 한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는 을사오적인 친일파 이완용과 윤덕용이 이 일대 땅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윤덕용은 옥인동에 자신의 딸을 위한 집을 짓기도 했다. 한옥과 양옥, 중국식 가옥 양식을 모두 응용해 지은 이 집은 동양화가 박노수 화백이 살기도 했다. 역사적 가치가 높아 서울특별시문화재자료 제1호로 보호하고 있다. 서촌은 구한말과 20세기 격변기를 훌쩍 뛰어넘어 옛 예인들의 정체성을 다시 복원하고 있다.

○예술안 공방과 어울린 작은 카페의 거리

▲ 지난 2월 16일 종로구청(구청장 김영종)이 청운동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서 윤동주 시인의 옥사 67주기 추모제를 열고 있다.[사진=종로구청 제공]
얼마 전부터 이 일대에 속속 들어서는 공방들이 그 주역이다. 또 작은 커피집이나 간단한 요깃거리를 파는 카페도 다른 곳과 다르다. 서촌의 카페는 북촌 인근 삼청동에 늘고 있는 전문 음식점과 같이 화려하지도 않고 유럽 유명레스토랑 출신 셰프를 내세우지도 않는다. 그냥 있는 듯 없는 듯. 무심하게 오전에 문을 열고 밤늦게 닫는다.

이밖에 작은 갤러리, 출판사, 서점 등이 골목 사이사이에 들어서면서 문화의 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청운동에 윤동주 문학관이 문을 열었고, 이상이 살던 통인동 집터에 세워진 가옥을 문화공간으로 꾸민 ‘이상의 집’도 시민들에게 개방됐다.

이상의 집은 내년 4월까지 이상, 근대, 경복궁 서측 지역 등을 주제로 음악 문학 영화 미술 건축 관련 문화행사를 선보이는 ‘통인동 제비다방’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또 최근 옛 옥인아파트를 철거한 자리에 겸재 정선의 발자취가 남은 인왕산 수성동계곡을 복원했다.
경복궁역 4번 출구로 나오면 고궁박물관 입구다. 고궁박물관은 조선왕조 600년의 유물을 전시한다. 지척에 있는 경복궁의 속살을 따로 빼내 시민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고궁박물관 맞은편은 통의동 대림미술관이다. 대림미술관은 지난 5일 한국 현대미술 글로컬리즘 콘퍼런스 ‘큐레이팅 인 아시아 2012’를 열었다.

세계 곳곳에서 진행돼온 국제적인 프로젝트를 공유하고 아시아 현대미술의 이슈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인사동 화랑가와 홍대 앞, 강남의 여러 갤러리보다 오랜 전통을 가진 미술관으로 서촌의 예술사를 상징하는 미술관이다. 대림미술관 뒷쪽으로 서촌 한옥촌이 이어진다. 이 골목 안쪽에는 1962년 천연기념물 43호로 지정된 통의동 백송이 있다. 통의동 백송은 높이 16m, 흉고둘레 5m에 달할 정도로 큰 고목이었다.

하지만 1990년 7월 태풍으로 쓰러져 이제 그루터기만 남아 있다. 이 주변에 보안여관이 있다. 보안여관은 서정주 시인 등 많은 예술인이 묵었던 80여 년 역사를 가진 유서깊은 곳이다.

보안여관은 이름만 보고 아직 숙박시설로 오해하는 시민이 많지만 이제 소박한 복합문화공간으로 지역 예술인들의 모임 터 역할을 한다.

○서울에서 정주의식 가장 강한 동네

▲ 옥인동과 효자동, 청운동 등 서촌의 주택가 골목은 최근 다양한 공예품을 만드는 공방과 작은 카페 등이 들어서면서 부흥기를 맞고 있다(사진 왼쪽). 통의동의 통인시장은 서울의 유서깊은 재래시장으로 인근 주민들뿐만 아니라 관광객 방문도 점차 늘고 있다.
서촌의 행정동인 청운효자동에는 효자동·창성동·통인동·누상동·누하동·옥인동·청운동·신교동·궁정동 등 9개 법정동이 있다. 모두 골목에서 골목으로 연결된 동네들이다. 서촌의 골목은 여기가 저기 같고, 저기가 여기 같다.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은 길을 잃고 헤매기 십상이다.

서촌은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총독부에 밀려, 광복 후에는 청와대 위세에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동네가 됐다. 청와대와 가까운 청운동, 효자동과 통의동, 옥인동은 정부의 규제로 3층 이상의 건물을 지을 수 없었다. 문민정부 이후 규제가 완화됐다고는 하지만 5층짜리 건물은 고작 서너 개 될 뿐이다. 계절마다 나무의 잎사귀 색이 변하는 것보다 빠르게 건물을 허물고 짓는 서울의 다른 지역과 확연히 다른 곳이다.

▲ 통인시장에는 기름으로 떡을 볶는 '진짜 옛 떡볶이'를 파는 가게 2곳이 입소문을 타고 젊은이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골목마다 하나씩 있는 가게도 20~30년 이상 한 주인이 운영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때문에 서촌에 들어서면 시간이 갑자기 느리게 흐른다.

한 때 이곳에도 개발 바람이 분 적이 있었다. 낡은 주택을 정비해 아파트를 세우고 미로처럼 얽힌 골목도 정비한다는 계획이었다. 일부 주민들도 개발 이익을 은근히 기대했다. 하지만 재개발계획은 얼마 못가 모두 중단되고 말았다.

주민들의 정주의식(定住意識)이 워낙 강한데다 청와대 인근이라는 이유로 고도제한이 있기 때문이다.
서촌 재개발 참여를 준비하던 대형 건설사도 고층아파트를 세우지 못해 수익성을 내기 힘들다는 판단에 따라 사업을 접었다. 덕분에 서촌은 지금 모습 그대로 남게 됐다.

서촌 주민들은 나이가 많다. 대부분의 가구가 서울 토박이들로 구성돼 있다. 이 때문에 장성한 자식들은 결혼과 함께 서촌을 떠나 서울 곳곳으로 흩어졌다. 명절이면 친가를 찾아 차례를 지내는 자식들이 몰려들면서 골목길마다 승용차로 가득 찬다.

서촌의 명절은 그러나 역귀성이 아니다. 서울의 다른 곳에 사는 2세, 3세들이 서촌 마을로 귀향하는 셈이다. 그만큼 서촌은 서울의 다른 지역과 확연히 구별된다.

○종묘사직의 한 축, 사직단 모신 곳

▲ 매년 9월 서울 종로구 사직단에서 국가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토지와 곡식의 신에게 지내는 조선시대의 국가 제례(祭禮)인 사직대제(社稷大祭)를 봉행한다.
경복궁역에서 사직터털 쪽으로 가다보면 오른쪽으로 사직공원이 나온다.
사직공원은 서울에 도읍을 정한 조선 태조 이성계가 경복궁 동쪽에 종묘(宗廟), 서쪽에는 사직단을 설치한 자리를 공원화한 곳이다. 조선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종묘사직의 한 축이 바로 사직단이다.

사직단은 사단(社壇)과 직단(稷壇)의 동·서 양단(東西兩壇)을 설치했다. 동단에는 국사(國社:正位土神), 서단에는 국직(國稷:正位穀神)을 모셨고 단에는 주척(周尺)으로 높이 2.5자, 너비 1자의 석주(石柱)를 세워 후토씨(后土氏)와 후직씨(后稷氏)를 배향했다.

사직단에는 1년에 네 차례의 대사(大祀)와 선농(先農)·선잠(先蠶)·우단(雩壇)을 제사지내는 중사(中祀), 그 밖에 기곡제(祈穀祭)와 기우제(祈雨祭)를 지냈다. 조선왕조는 사직서(社稷署)를 세워 이같은 제사의 수발을 맡도록 했다.

현재는 문화재청과 서울시가 매년 한 차례씩 사직대제를 재현하고 있다.

○백사실계곡 도롱뇽을 아시나요?

▲ 부암동 백사실계곡은 서울 사대문안의 유일한 도롱뇽 서식지로 지난 2009년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됐다.
서촌에서 북쪽으로 더 올라가면 종로구 부암동이다. 경복궁역에서 7022번, 1020번, 7212번 버스를 타면 금방이다.

청운효자동에 포함된 옥인동 등이 인왕산 어깨에 걸쳐있다면 부암동은 북악산 산자락에 얹혀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부암동 주민들은 우후죽순 문을 여는 카페에 몸살을 앓고 있다. 부암동이 알려지면서 길을 따라 카페와 식당이 이어지고 주말이면 시민들이 몰고 온 승용차로 북새통을 이룬다.

당초 부암동은 서울의 산촌으로 남아있었다. 10여 년 전만해도 부암동 일대는 농가주택과 같은 작은 집 몇 채와 비탈에 일군 밭이 즐비한 동네였다.

이런 환경 때문에 부암동의 백사실계곡은 서울에서 도롱뇽이 사는 유일한 청정 지역으로 남았다. 환경운동연합 등은 백사실계곡을 서울 환경의 척도로 내세우며 보호운동에 발벗고 나서왔다.

▲ 서울환경연합 회원들이 3월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창의문 앞에서 개최한 서울시보호종 백사실계곡 도롱뇽 보호캠페인에서 피켓을 들고 있다.
이들 환경단체는 또 백사실계곡 일대를 차 없는 거리로 지정해달라는 청원을 계속해 왔다. 봄철 부암동을 찾으면 아직까지도 서울의 마지막 도심속 시골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세종의 셋째 아들이었던 안평대군은 부암동이 꿈에서 본 ‘무릉도원’과 같다며 자신의 별장 ‘무계정사(武溪精舍)’별장을 짓고 살았다. 이후 무계정사 터 한쪽에는 ‘운수 좋은 날’의 작가 현진건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있다.

현진건은 1935년 일장기말소사건으로 감옥살이를 한 뒤 이곳에서 닭을 치며 가난하게 살아야 했다. 하지만 그는 이곳에서 소설 ‘무영탑’을 집필하는 치열한 작가의식을 남겼다.

또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최근 백사실계곡 일대에 있던 백석동천(白石洞天)’이 한때 추사 김정희(1786~1856)의 별장이었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아 눈길을 끌었다.

또 임진왜란 당시 도승지로서 선조의 의주 몽진과 한양 환도를 이끌었던 백사 이항복의 별장터로도 잘 알려져 있다. 백사실계곡이라는 이름도 이항복의 호에서 따온 것이다. 추사가 살았다는 백석동천은 당초 이항복이 세운 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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