넝마공동체 어르신들 폭설속 유랑생활
넝마공동체 어르신들 폭설속 유랑생활
  • 이인우 기자
  • 승인 2012.12.07 0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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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 언론관심도 잠잠, 시민 푼돈 지원으로 찜질방 전전
▲강남구청의 강제철거에 밀려난 넝마공동체 회원 어르신들이 지난 2일 탄천제방에서 밥을 지어 선 채로 저녁식사를 하고 있다. [사진= 이인우 기자 seoultimes.net]

지난 달 일부 언론에 강남구 포이동의 넝마공동체 관련 뉴스가 소개됐다. 강남구청(구청장 신연희)이 9일 철거용역을 동원해 지하철 분당선 개포동역과 잇닿아 있는 양재천 영동5교 아래 넝마공동체 숙소를 강제로 철거했다는 것이 첫 소식이었다.

이후 15일 강남구청은 탄천변 대치운동장으로 쫓겨 간 넝마공동체 숙소를 다시 기습철거했다. 넝마공동체는 거세게 반발하며 탄천운동장으로 다시 들어가려고 했으나 강남청은 굴삭기를 동원, 운동장 전체를 파헤쳐 발 디딜 틈도 없게 만들었다.

넝마공동체 관련 보도는 서울시가 신설한 인권위에 첫 진정을 접수했다는 내용을 끝으로 30일 신문지상에서 사라졌다. 한 때 철거 현장에 나왔던 일부 언론의 취재진도 다시 찾지 않는다.

영하의 날씨 ‘얼어 죽지 않으려면…’

넝마공동체 구성원 30여 명 중 20여 명은 5일 현재까지 영하로 떨어진 날씨에 유랑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60~70대 어르신이 대부분인 넝마공동체 회원들은 낮이면 탄천운동장 옆에서 농성을 계속한다.

농성 장소인 탄천 제방으로 가는 길목은 강남구청이 동원한 제설차와 철거용역업체 차량으로 보이는 승합차, 그리고 출입자를 일일이 ‘검문’하는 용역업체 직원을 통과해야 한다.

넝마공동체 회원들의 재산은 탄천제방에 쌓아둔 포대자루 20여개와 밥을 지어먹는 압력솥 하나가 전부다. 회원들은 제방 위에서 밥을 지어 배추겉절이 하나로 허기진 배를 채운다. 그렇게 하루를 지내다보면 짧은 겨울 해는 순식간에 인근 고층아파트 뒤로 자취를 감춘다.

넝마공동체 회원들이 또 어디서 하룻밤을 지내야 할지 발을 구르는 시간이다. 4일 회원들은 오후 4시까지 농성하다 강남구청으로 몰려갔다. 영하 5도 이하로 떨어진 날씨에 더 이상 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강남구청이 압류한 숙소 구조물인 컨테이너를 돌려주든지, 아니면 하룻밤 묵을 숙소라도 제공해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강남구청은 경찰을 불러 넝마공동체 회원들을 강제로 몰아냈다.

강남구청, 적법한 행정처리만 내세워

강남구청은 15일 탄천운동장 기습철거 당시에도 용역을 동원, 일부 공동체 회원들에게 상해를 입히기도 했다. 9일 영동5교 아래 강제철거에 대해서도 그동안 수차례 퇴거 경고장을 보냈으나 넝마공동체가 이를 따르지 않아 집행한 적법 절차였다고 강조한다.

강남구청의 적법한 행정조치를 받은 넝마공동체 회원들은 하루하루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유랑을 계속하고 있다. 강남구청은 또 넝마공동체의 도로 무단 점유 등을 문제 삼아 공동체 설립자인 윤팔병 전 대표의 재산을 압류했다.

이와 함께 전 넝마공동체 회원 일부를 세곡동 임시 작업장으로 이전시킨 뒤 이른바 ‘넝마공동체 청년사업단’ 지원에 나섰다고 대대적인 홍보를 진행하기도 했다.

넝마공동체 관계자에 따르면 ‘넝마공동체 청년사업단’은 과거 개인적인 문제로 공동체에서 내보낸 이모 씨가 별도 4~5명을 끌어들여 만든 단체다. 이들은 강남구청이 제공한 세곡동 임시 작업장에 자리 잡고 강남구청과 국제라이온스협회 354-D지구로부터 쌀 10포, 라면 10박스, 전기장판 4장, 히터 2대, 화장지 4박스 등을 지원받았다.

하지만 세곡동 임시작업장은 260㎡(80평) 이내의 면적으로 재활용품 수집과 분류작업을 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공간이다.

속사정 아는 경찰이 내준 찜질방 요금

한편, 4일 밤 넝마공동체회원들은 공동체 속사정을 잘 아는 경찰이 내준 돈으로 찜질방에 들어가 하룻밤을 보냈다. 탄천운동장에서 쫓겨난 뒤 이날까지 찜질방에 몸을 의탁한 셈이다.

찜질방 이용료는 1인당 7000원. 첫날 회원들이 모았던 돈을 다 쓴 뒤로 간간이 이어지는 개인들의 지원으로 하루하루 추위를 피하고 있다. 강남경찰서는 넝마공동체 회원들을 서울시 노숙인 쉼터로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자립을 공동체의 첫째 목표로 내세웠던 회원들은 이같은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

자신의 힘으로 떳떳하게 일하고 수입을 나눠 공동체를 만든 이들에게 노숙인 쉼터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이들이 언제까지 유랑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당장 5일 서울을 뒤덮은 눈구름은 쉴 새 없이 눈을 퍼붓고 있다. 탄천 제방에 쌓아둔 공동체의 전 재산인 마대자루도 눈에 속절없이 눈에 덮이고 있다. 넝마공동체 회원들은 퍼붓는 눈 속에 밥도 지어먹지 못하고 추위에 떨고 있다.

사회적 기업 설립 준비 중 닥친 기습철거

넝마공동체는 지난 10월부터 사회적기업 설립을 준비해 왔다. 지난 25년 동안 쌓아온 폐품수집과 자원재활용 노하우를 활용, 최대 100명 이상의 고용창출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사회적 기업을 만들겠다는 청사진이었다.

이를 위해 포이동 영동5교 작업장 인근 건물 지하에 4㎡(1.5평) 내외의 소호사무실을 임대, 사회적기업이나 사회적협동조합 설립 작업을 진행 중이다. 넝마공동체는 이를 의해 영동5교 아래 작업장 겸 숙소 외에 서울시로부터 유휴 공간을 임대받는 방안을 모색해 왔다.

서울시로부터 사회적기업, 또는 사회적 협동조합 설립인가를 받을 경우 작업장을 새로 마련하고 초기 지원금 등을 활용, 도시빈민이 자립하는 법인으로 발돋움 한다는 계획이다.

사회적기업이나 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할 경우 넝마공동체는 소득 하위 1% 계층에 속하는 도시빈민들의 사회·경제 공동체라는 새로운 모델을 선보이게 된다. 서울의 수많은 쪽방촌에서 불편한 몸을 이끌고 폐지 수집으로 연명하는 독거노인이나 겨울철 출소해 갈 곳 없는 전과자들도 모두 수용할 수 있다.

현재 넝마공동체는 회원 1인당 월 1만 원의 회비를 거두고 있다. 회원들은 1만원을 내고 한 달 숙식을 제공받는 대신 폐품 수집 등 공동작업에 참여해야 한다.

사회적기업, 또는 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하게 되면 이러한 규정대로 조합비를 거출해 공동체 조직을 더욱 탄탄하게 만들 수 있다. ‘나랏님도 못한다’는 가난을 취약계층 스스로의 힘을 모아 물리치고자 하는 도전인 셈이다.

서울시, 직접 공동체 현황파악 나서

넝마공동체는 강남구청으로부터 강제 퇴거 된 뒤 3가지 대안을 세워둔 상태다. 영동5교 아래 옛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방안은 최후의 제3안이다. 이미 사회적기업 설립을 준비하면서 별도의 1, 2안을 준비 중이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비공식적으로 넝마공동체에 대한 실태파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넝마공동체는 서울시에 당면한 문제점과 중장기 계획 등을 전달하고 있다. 이들이 마련한 중장기 계획에 앞서 얘기한 1, 2안이 포함돼 있다.

서울시가 이들의 입장을 어떻게, 얼마나 받아들이고 어떤 형태의 지원을 할 수 있을 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서울시인권위원회 또한 넝마공동체로부터 제1호 진정을 접수하고 3일부터 실태조사를 진행 중이다.

인권위는 실태조사를 마친 뒤 그 결과를 서울시에 제출, 강남구청과 넝마공동체의 입장을 조율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금 당장 시급한 문제는 5일 현재 최대 10cm 이상 쌓인다는 대설주의보와 영하의 날씨 속에 넝마공동체 회원들이 살아남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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