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이 땅신·곡식신 모셨던 사직단
임금이 땅신·곡식신 모셨던 사직단
  • 나각순 서울시사편찬위 연구간사
  • 승인 2010.05.19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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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각순의 ‘서울 문화유산 둘러보기’ 6]

사직단(社稷壇)은 인왕산 남동 기슭에 있는 종로구 사직동 사직공원에 있다.

그곳에 가면 먼저 고색창연한 정면 3칸의 사직단 정문을 만나고, 이어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는 3칸의 북문을 들어서면 2기의 단을 볼 수 있다. 그 왼쪽 단(동쪽)이 나라의 국토신(國土神)을 모시는 사단(社壇)이고, 오른쪽(서쪽) 단이 오곡신(五穀神)을 모시는 직단(稷壇)인데, 이를 통틀어 사직단이라 한다.

▲ 서울 종로구 사직동 사직공원 내 사직단, 사적 제121호. ⓒ나각순

사직단은 왕조의 존재기반과 민생 삶의 바탕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건축물로 전근대사회 정통왕조의 상징 가운데 하나였다. 한편, 전근대사회 국왕은 하늘에서 내는 것이라 하여 천손사상과 왕토사상의 근원이 됐다.

반면 국왕이라는 위정자는 그 국가와 사회체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물적 기반을 제공하는 생산자, 이른바 농민ㆍ백성이라고 칭하는 생산대중을 바탕으로 존재하게 된다. 즉 세금을 거두어들여 통치의 경제적 기반으로 삼았던 것이다. 이 본질은 현대사회에서도 변함이 없다.

외형으로 보아서는 국왕이 지배층이고 백성이 피지배층을 이루지만, 백성이 없이는 왕이 존재할 수 없는 것으로 왕의 실질적인 하늘은 백성인 것이다. 따라서 조선왕조는 민본주의와 농본주의를 국책으로 삼았다.

그렇지만 임금의 하늘인 백성은 다시 그들의 호구지책을 하늘로 삼았다. 그런데 그들의 호구지책은 땅에서 생산되는 곡식으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땅의 신과 곡식의 신은 임금보다 한 단계 높은 상전이 됐다. 그리하여 임금의 정통성은 사직의 비호를 받음으로서 이루어진 것이니, 그 신성성은 궁궐보다 한 수 위였다.

여기서 오늘날 정치에서는 위정자의 하늘이 무엇이 될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21세기 위정자의 하늘이 인권ㆍ경제ㆍ문화ㆍ자연생태 보전, 어느 것이 우선순위일까? 종합적인 하늘은 실천되기 어려운 것일까? 위정자의 맑고 깨끗한 덕망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지도력과 이를 선도하는 유권자 대중의 실천적 참여가 조화를 이루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된다. 보름 후에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한 선거를 치러야 한다. 

광해군 때 복구…일제 때 도시공원으로

나라의 제사로 사직이 모셔진 것은 삼국시대부터이며, 조선시대 사직제도는 고려 성종 때 정비된 제도를 계승한 것이다.

조선 태조는 1394년 한양으로 천도하고 고대 동양의 옛 도읍지 건설의 정형을 제시한 <주례(周禮)> 동관(冬官)  고공기(考工記)에 의해 남쪽을 향한 궁궐을 중심으로 좌묘우사(左廟右社)의 배치로, 좌측 동부 연화방(蓮花坊)에 종묘를, 우측 서부 인달방(仁達坊)에 사직단을 설치했다.

천도 이듬해인 1395년 1월 29일에 사직단 축조공사를 시작하여 2월 27일에 완성했다. 이후 4대향(四大享)과 납향을 올려 풍년을 기원했고, 국가의 중대사가 있을 때 고제(告祭)를 올렸다.

사직단은 임진왜란 때 폐허가 됐다가 광해군 원년(1608)에 복구됐다. 광무 1년(1897) 고종이 대한제국의 황제에 오르면서 사단과 직단은 태사단(太社壇), 태직단(太稷壇)으로 높여졌다.

▲ 사직단 정문, 보물 제177호. ⓒ나각순

▲ 사직단 정문 가구.  가는 창방을 기둥 윗몸에 끼우고 같은 위치에 익공을 끼웠다.
그러나 일제강점으로 1922년 사직단을 중심으로 약 6만 6,619평이 사직공원으로 탈바꿈되어, 1940년 3월 조선총독부고시 제208호 ‘경성시가지계획공원 제35호’에 따라 정식으로 도시공원이 됐다.

또한 1960년대 도시계획으로 신문(神門)이 뒤로 14m 들어가 그 면적이 더욱 축소되는 등 황폐된 것을 1988년에 고증 발굴하여 원형대로 복원했다.

공원의 현재 면적은 16만 8,000㎡이며, 현존하는 사직단은 9,091㎡(2,405평)만이 사적 제121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고, 사직공원 입구의 사직단 정문은 보물 제177호로 지정되어 있다.

공원 안 북쪽에는 단군성전(檀君聖殿)이 있으며, 그 뒷쪽으로 궁술연마장인 황학정(黃鶴亭)이 있다. 황학정(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5호)은 서촌 5사정 중 하나인 필운동 등과정(登科亭)의 터이다.

원래 이 황학정은 고종 광무 2년(1898) 어명에 의하여 경희궁 내 왕비가 거처하던 회상전(會祥殿) 북쪽에 지었던 것을 1922년 일제에 의해 경희궁이 헐리고 궁내 건물들이 일반에게 불하될 때 사직공원 북쪽인 등과정 옛터에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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