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량진은 서울의 4대 나루터 중 하나였다. 남쪽에서 한양도성에 이르는 가장 가까운 길목으로 삼남과 수도를 잇는 관문이었다.
군사적 요충지인 까닭에 숙종29년(1703년)에는 조선 최고 정예군인 금위영 소속의 별장이 배치되기도 했다. 또 나루터의 배인 진선(津船)을 15척 정도나 둘 정도로 규모가 컸다.

노량진 인근 동작본동 10-30(초롱길 8-1)에는 정조가 한강을 건넌 뒤 잠시 쉬어가기 위해 지은 행궁 ‘용봉양저정’(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6호)이 남아있다. 또 노량진 남쪽 장승배기 또한 어가를 잠시 멈추고 쉬어가던 곳이었다. 정조는 나무숲이 우거진 이곳에 장승을 세워 양민들의 통행을 도우라는 어명을 내렸다. 곧이어 커다란 장승을 세웠고 지금까지 서울의 지명으로 남아있다.

○삼남에서 한양 들어서던 첫 관문

한강철교를 세우기 전인 1899년 서울(노량진)~인천(제물포) 간 33.2km의 경인선 철도가 놓이면서 노량진역은 국내 최초의 철도역이 됐다. 지금은 1975년 김종필 당시 국무총리의 휘호를 새겨 세운 철도시발지 비석이 남아있다.

이 다리를 건너 올림픽대교를 타거나 상도터널을 빠져 남부순환로 쪽으로 가는 수많은 차량은 96년 전 세운 교각 위를 지나는 셈이다. 한강대교는 6·25 개전 3일만에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하기 앞서 국군 공병대가 폭파, 수많은 피난민의 발을 묶었다. 다시 한강대교가 세워진 것은 그로부터 8년이 지난 1958년 5월이었다.
한강대교라는 이름을 붙인 때는 원래의 한강인도교를 두 배로 확장한 1981년부터였다. 한강의 다리는 1965년 제2한강교인 양화대교, 1969년 제3한강교(한남대교)가 세워진 뒤 지속적으로 늘어 현재 동쪽 끝 미사대교와 서쪽 끝 일산대교를 포함, 총 26개에 이른다. 올해 암사대교까지 완공하면 27개로 늘어난다.
과거 노량진을 대신하던 한강대교 1개에 의존, 서울의 교통량을 소화하던 1965년과 비교하면 불과 48년만에 26개의 다리가 늘어나는 셈이다. 다리가 이만큼 늘어남에 따라 한강대교의 교통량은 매년 줄어들고 있다. 2000년에는 하루 평균 13만 8000여대가 한강대교를 지났지만 2009년에는 10만 8262대로 줄어들었다.
○닮은 듯 다른 아차고개와 아차산 지명유래


아차고개의 첫 번째 지명유래는 사육신의 처형에 얽힌 얘기다. 영등포 이남에 살던 한 선비가 사육신 처형이 부당하다고 간(諫)하기 위하여 도성을 향해 말을 달려오다 이 고개에 이르렀을 때 이미 새남터에서 처형됐다는 소식을 듣고 ‘아차! 늦었구나’하고 한탄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또 하나의 유래는 조선 명종 때 점술가인 홍계관이 자기의 명을 점쳐 보니, 모년 모월 모일에 횡사하는 점괘가 나왔다. 살아날 길을 찾아보 용상(龍床)아래 숨어 있으면 횡사를 면한다는 궤가 나왔다. 홍계관은 왕에게 승낙을 받고, 날짜에 맞춰 용상아래 숨어있었다.
때마침 쥐 한 마리가 마당을 질러가고 있어 이를 본 왕이 홍계관에게 ‘지금 마당에 쥐가 지나가는데 몇 마리인지 점을 쳐 보아라’고 명했다. 홍계괸이 세 마리라 하자 왕이 노하여 형관을 시켜 그의 목을 베라 했다. 나중에 왕이 쥐를 잡아 배를 갈라 보니 뱃속에 새끼 두 마리가 있었다. 왕은 곧바로 참형을 중지하라 했으나 간발의 차로 막지 못했고 이를 전해들은 왕은 ‘아차’하고 매우 슬퍼해 형장으로 가던 이 고개를 아차고개라 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두 번째 유래는 광진구 아차산과 장소만 바뀌었을 뿐 같은 이야기가 조금 변행된 것인데다 점술가가 용상 아래 숨었다는 얘기 등으로 볼 때 신빙성이 낮다.
아차산 유래는 명종이 홍계관의 점술을 시험하기 위해 궤짝에 넣은 쥐가 몇 마리인지 알아보는 시험을 한 뒤 처형한 뒤 나중에 후회했다는 이야기다. 아차산은 당시 처형장의 위쪽에 있는 산이었다고 한다.
○밥 한 끼 3000원 이하, 커피는 4000원

노량진은 과거 지방에서 접근하기 쉽고 서울 한강철교나 한강대교만 건너면 강북 중심가로 이어져 일찌감치 학원이 밀집하기 시작했다. 7~9급 공무원시험 대비 학원이 대부분인 까닭에 신림동 일대의 시험 준비생은 고시족, 노량진은 공시족으로 통한다. 최근에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의 변호사 배출로 신림동 고시촌 인구가 빠져나가면서 노량진이 더 커진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최근 노량진은 지난 1월 동작구청이 밀어붙인 컵밥 노점 철거로 화제에 올랐다. 컵밥은 큰 컵라면만 한 종이컵에 밥을 담고 반찬을 얹어 간단히 한 끼를 해결하는 노량진의 대표 패스트푸드다. 컵밥 하나의 가격은 2000~2500원. 주머니 가벼운 공시족이나 재수생들의 간편식으로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컵밥 장사가 잘 될수록 인근 식당 매출이 줄었고 이들의 민원에 따라 구청에서 강제철거라는 강수를 택했다. 이번에 철거한 컵밥 노점은 골목길 안쪽의 무허가 점포였다. 큰길가의 구청 허가를 받은 노점은 여전히 컵밥을 팔고 있다.
이들 노점상들은 가급적 인근 식당 메뉴와 겹치지 않는 컵밥 개발에 나선다. 가난한 자들의 슬픔이 담긴 메뉴가 바로 컵밥이다. 컵밥의 인기가 높자 일부 대기업 계열 24시간 편의점에서도 같은 품목을 팔기 시작해 가진 자의 횡포라는 비난도 일고 있다.

고시식당의 음식 값은 열 번 먹기로 약정하는 10식은 3만 원, 한 달용 월식은 16만 원, 한 달 동안 하루 두 끼씩 먹는 이식은 14만 원 선이다. 하지만 일부 공시족은 컵밥 2개 가격인 커피를 마시며 휴식 시간을 즐겨 부러움을 사기도 한다. 이를 반영하듯 노량진학원가에도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이 들어선지 오래다.
○서울 한복판 국내외 해산물 총 집결지

서울의 한복판에서 요즘 보기 드문 쥐치부터 제주에서 잡힌 참치까지 볼 수 있는 곳은 노량진수산시장이 유일하다. 이뿐만 아니라 꽁꽁 언 채로 사고 팔리는 동태부터 수입 낙지며 명태 등에서 펄펄 뛰는 참돔, 방어, 넙치까지 시장을 가득 채운다. 요즘 한참 제철인 대게, 털게도 수조 안에서 살아 움직인다.
유난히 활어를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맛에 맞춰 진열된 생물(生物) 시장은 외국인 관광객들의 인기코스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큰 갯지렁이와 딱히 구분할 수 없는 개불 등을 그 자리에서 썰어 먹는 모습은 이방인들에게 충격적인 광경이다. 노량진수산시장은 수산물 소비 1위 나라인 일본인들에게도 새로운 풍경이다. 선어를 주로 먹는 일본인들에게 커다란 생선을 산채로 잡아 회를 치는 모습이 낯설기 때문이다.

대게나 털게, 킹크랩 등을 고를 때 단골은 더 큰 이점이 있다. 상인들은 아는 손님일수록 살이 더 단단하게 여문 게 등을 권할 수밖에 없다. 살이 없는 대게 등은 단골이 원해도 아예 내주지 않는다.
이런 시장인심 때문에 노량진수산시장을 한 번 찾은 시민들은 기회가 닿을 때마다 같은 집을 다시 가게 된다. 상인과 손님 사이의 ‘Win-Win’ 거래가 활성화되는 순환이 이루어지는 셈이다.

○새벽을 여는 상인과 저녁 불 밝히는 시민

노량진수산시장의 영업시간은 도매와 경매로 나뉜다. 도매는 고급활어의 경우 새벽 3시부터 열리고 고급선어와 대중부류(가격이 높지 않은 중간 품질 어패류 등)는 새벽 1시30분부터, 냉동부류는 세벽 3시부터, 젓갈용 생선 내장 등 폐류는 가장 이른 시간인 새벽 1시부터 장이 열린다. 도매시장은 일요일과 명절 연휴 등에는 문을 열지 않는다.
여중무휴 열리는 도소매는 대부분 점포마다 정해놓은 시간이 다르다. 고급 활어는 대부분 24시간 문을 열지만 나머지 시장은 밤 10시까지 잠시 닫은 뒤 새벽에 다시 연다.
앞서 예로 든 최 씨가 찾는 시간은 도소매 시장이 다시 문을 여는 새벽 3시 이후다. 보통의 시민들은 한참 단 잠에 빠져 있을 시간이다. 최 씨와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 그리고 밤을 새워 동해안과 남해안, 서해안에서 달려온 운전기사들 덕분에 시민들은 느긋하게 싱싱한 해산물을 맛보게 된다.
시장 안에서 회 맛을 보기 위해서는 2층 양념집이 몰려 있는 2층으로 올라가야 한다. 시장 전경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복도를 지나 자신이 알고 있거나 활어점포에서 소개해준 양념집을 찾아간다.
하지만 2층 시설이 워낙 오래돼 쾌적한 분위기는 아니다. 회 맛을 최대한 끌어올려주는 일본식 간장이나 고추냉이(와사비)도 품질이 좋지 않다. 때문에 입맛 까다로운 시민들은 일제 튜브 와사비와 사시미 간장을 따로 지참하기도 한다. 물론 된장을 기본으로 한 한국식 양념장이 더 어울리는 회에는 양념집에서 내주는 막장이 훨씬 더 좋다
○도쿄 츠키지시장 부럽지 않은 수산시장

1971년 문을 연 이후 너무 낡은 시설을 개선하기 위해서다. 계획에 따르면 2015년 7월 대지면적 4만450㎡(연면적 11만8346㎡)에 지하 2층, 지상 6층 규모로 변모한다. 또 HACCP기준 시설설비, 저온유통시스템, 악취 환기 시스템, 경매장 내 고온고압세척시스템 등을 갖추고 창고관리에 바코드시스템을 도입해 100% 전자경매체계도 갖출 예정이다.

국내 어시장의 대표 격인 부산자갈치시장은 현대화를 마무리한 현재 연면적 2만5910㎡로 노량진수산시장보다 훨씬 작다. 노량진수산시장 또한 현대화가 마무리되더라도 연면적 23만㎡에 이르는 세계 최대의 어시장인 일본 도쿄 츠키지 어시장의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
츠키지시장은 장내와 장외로 나뉜데다 내로라하는 초밥집이며 사시미 전문점, 우동집 등이 밀집해 새벽부터 수백미터의 줄을 선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이러한 관광 명소화는 서울시와 동작구가 그리는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의 밑그림이다.
동작구는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와 함께 여의도와 노량진수산시장을 잇는 보도육교 설치를 계획하고 있다. 그동안 단절됐던 여의도와 노량진 상권을 연결, 역경제 활성화를 노리겠다는 복안에서 추진하는 사업이다.
여의도에서 노량진수산시장을 가기 위해서는 5분 거리의 택시를 타거나 노량진역 앞까지 빙 돌아가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보도육교는 폭 5m, 길이 380m 규모로 자전거 이동이 가능해진다. 또 엘리베이터와 전망대 등을 설치해 한강에 쉽게 접근하도록 만들 계획이다.
○노량진 거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