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함께 돌자 서울 한바퀴 (20) 노량진
다함께 돌자 서울 한바퀴 (20) 노량진
  • 이인우 기자
  • 승인 2013.03.05 0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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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가 개혁의 꿈 안고 건너던 노량진… 공시족 허기 달래던 컵밥 노점은 쫓겨나고…
▲ [포털 다음 지도 갈무리]

노량진은 서울의 4대 나루터 중 하나였다. 남쪽에서 한양도성에 이르는 가장 가까운 길목으로 삼남과 수도를 잇는 관문이었다.

군사적 요충지인 까닭에 숙종29년(1703년)에는 조선 최고 정예군인 금위영 소속의 별장이 배치되기도 했다. 또 나루터의 배인 진선(津船)을 15척 정도나 둘 정도로 규모가 컸다.

▲ 정조 어진.
노량진은 또 정조가 꿈꾸었던 미완의 개혁이 아픔으로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조선의 22대 임금인 정조(1752년~1800년) 당시 가장 바쁜 나루터가 됐다. 정조는 1789년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수원 현륭원으로 옮긴 뒤 무려 13회나 한강을 건넜다. 그때마다 노량진에는 배 위에 판자를 이어 붙인 주교(舟橋)가 놓여 왕의 행차를 맞았다. 당시의 광경은 ‘화성능행도’ 등에 세밀하게 묘사돼 있다. 또 1796년 화성을 완성한 뒤에는 정조의 행차가 더욱 잦았다.

노량진 인근 동작본동 10-30(초롱길 8-1)에는 정조가 한강을 건넌 뒤 잠시 쉬어가기 위해 지은 행궁 ‘용봉양저정’(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6호)이 남아있다. 또 노량진 남쪽 장승배기 또한 어가를 잠시 멈추고 쉬어가던 곳이었다. 정조는 나무숲이 우거진 이곳에 장승을 세워 양민들의 통행을 도우라는 어명을 내렸다. 곧이어 커다란 장승을 세웠고 지금까지 서울의 지명으로 남아있다.

▲ ‘화성능행도’에 있는 노량주교도섭도.

 

○삼남에서 한양 들어서던 첫 관문

▲ 노량진역은 한강철교를 건너자마자 나오는 한강 이남의 첫번째 역이다.
노량진은 한강대교와 한강철교가 놓이면서 수운(水運) 중심지가 아닌 철도교통의 중심지가 됐다.
한강철교를 세우기 전인 1899년 서울(노량진)~인천(제물포) 간 33.2km의 경인선 철도가 놓이면서 노량진역은 국내 최초의 철도역이 됐다. 지금은 1975년 김종필 당시 국무총리의 휘호를 새겨 세운 철도시발지 비석이 남아있다.

▲ 1950년 12월 28일 찍은 한강철교. 같은해 9월 국군이 후퇴하면서 폭파한 한강철교 오른쪽 옆으로 임시 부교를 가설해 놓았다.
철교가 세워진 뒤부터 경부선과 전철 제1호선 등이 지나면서 조선시대 서울의 교통관문 역할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일제는 1900년 한강철교에 이어 1917년 한강인도교를 완공했다. 지금의 한강대교로 확장돼 자동차까지 지나게 된 것은 1929년의 일이다. 지금 한강대교의 기단은 당시 일제가 세운 모양 그대로 남아 있다.

이 다리를 건너 올림픽대교를 타거나 상도터널을 빠져 남부순환로 쪽으로 가는 수많은 차량은 96년 전 세운 교각 위를 지나는 셈이다. 한강대교는  6·25 개전 3일만에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하기 앞서 국군 공병대가 폭파, 수많은 피난민의 발을 묶었다. 다시 한강대교가 세워진 것은 그로부터 8년이 지난 1958년 5월이었다.

한강대교라는 이름을 붙인 때는 원래의 한강인도교를 두 배로 확장한 1981년부터였다. 한강의 다리는 1965년 제2한강교인 양화대교, 1969년 제3한강교(한남대교)가 세워진 뒤 지속적으로 늘어 현재 동쪽 끝 미사대교와 서쪽 끝 일산대교를 포함, 총 26개에 이른다. 올해 암사대교까지 완공하면 27개로 늘어난다.

과거 노량진을 대신하던 한강대교 1개에 의존, 서울의 교통량을 소화하던 1965년과 비교하면 불과 48년만에 26개의 다리가 늘어나는 셈이다. 다리가 이만큼 늘어남에 따라 한강대교의 교통량은 매년 줄어들고 있다. 2000년에는 하루 평균 13만 8000여대가 한강대교를 지났지만 2009년에는 10만 8262대로 줄어들었다.

○닮은 듯 다른 아차고개와 아차산 지명유래

▲ 사육신 공원(死六臣公園)은 노량진동에 있는 묘와 사육신비 등이 안장된 공원이다. 본래 이곳에 있던 박팽년·성삼문·유응부·이개의 묘에, 하위지·유성원·김문기의 가묘를 새로 조성했다.
서울역에서 출발해 한강철교를 건넌 열차가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곧바로 노량진역이 나온다. 노량진역에 닿기 전 한강철교 남단 왼쪽으로는 푸른 숲만 보인다.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강 건너 새남터에서 처형된 사육신을 기리는 공원이다. 사육신공원은 성삼문·박팽년·하위지·이개·유성원·유응부·김문기 등 일곱 충신의 위패를 모신 사육신묘(서울특별시유형문화재 8) 일대 4만9401㎢를 성역으로 가꾼 공원이다. 

▲ 사육신 공원의 의절사에서 제관들이 사육신 순절 추모제향을 올리고 있다. 추모제향은 사육신의 충절정신을 알리고 지역전통문화를 계승 발전하기 위한 행사로 이어지고 있다.
사육신공원으로 가는 고갯길은 아차고개라고 부른다. 아차고개의 지명유래는 광진구 아차산과 비슷하다.  
아차고개의 첫 번째 지명유래는 사육신의 처형에 얽힌 얘기다. 영등포 이남에 살던 한 선비가 사육신 처형이 부당하다고 간(諫)하기 위하여 도성을 향해 말을 달려오다 이 고개에 이르렀을 때 이미 새남터에서 처형됐다는 소식을 듣고 ‘아차! 늦었구나’하고 한탄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또 하나의 유래는 조선 명종 때 점술가인 홍계관이 자기의 명을 점쳐 보니, 모년 모월 모일에 횡사하는 점괘가 나왔다. 살아날 길을 찾아보 용상(龍床)아래 숨어 있으면 횡사를 면한다는 궤가 나왔다. 홍계관은 왕에게 승낙을 받고, 날짜에 맞춰 용상아래 숨어있었다.

때마침 쥐 한 마리가 마당을 질러가고 있어 이를 본 왕이 홍계관에게 ‘지금 마당에 쥐가 지나가는데 몇 마리인지 점을 쳐 보아라’고 명했다. 홍계괸이 세 마리라 하자 왕이 노하여 형관을 시켜 그의 목을 베라 했다. 나중에 왕이 쥐를 잡아 배를 갈라 보니 뱃속에 새끼 두 마리가 있었다. 왕은 곧바로 참형을 중지하라 했으나 간발의 차로 막지 못했고 이를 전해들은 왕은 ‘아차’하고 매우 슬퍼해 형장으로 가던 이 고개를 아차고개라 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두 번째 유래는 광진구 아차산과 장소만 바뀌었을 뿐 같은 이야기가 조금 변행된 것인데다 점술가가 용상 아래 숨었다는 얘기 등으로 볼 때 신빙성이 낮다.

아차산 유래는 명종이 홍계관의 점술을 시험하기 위해 궤짝에 넣은 쥐가 몇 마리인지 알아보는 시험을 한 뒤 처형한 뒤 나중에 후회했다는 이야기다. 아차산은 당시 처형장의 위쪽에 있는 산이었다고 한다.

○밥 한 끼 3000원 이하, 커피는 4000원

▲ 7·9급 공무원 시험을 비롯, 각종 자격증 시험 대비 학원이 밀집한 노량진 학원가는 저녁 늦게까지 주머니가 가벼운 시험 준비생들을 위한 거리 음식점이 불을 밝힌다.
노량진역 맞은편에서 좌우로 이어진 길 가에는 대형 학원들이 하늘을 가린다. 공무원시험 학원부터 공인중개사 등 각종 자격증 대비 학원, 입시학원까지 50개에 가까운 학원이 늘어서 있다.

노량진은 과거 지방에서 접근하기 쉽고 서울 한강철교나 한강대교만 건너면 강북 중심가로 이어져 일찌감치 학원이 밀집하기 시작했다. 7~9급 공무원시험 대비 학원이 대부분인 까닭에 신림동 일대의 시험 준비생은 고시족, 노량진은 공시족으로 통한다. 최근에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의 변호사 배출로 신림동 고시촌 인구가 빠져나가면서 노량진이 더 커진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 고시촌의 명물인 컵밥집 일부가 구청에 의해 강제 철거된 2월 24일 오후 서울 동작구 노량진역 앞 일대 컵밥집에서 한 고시생이 컵밥을 사고 있다.
이전부터 노량진 일대에는 5만여 명의 공시족들이 시험준비에 매달려왔다.
최근 노량진은 지난 1월 동작구청이 밀어붙인 컵밥 노점 철거로 화제에 올랐다. 컵밥은 큰 컵라면만 한 종이컵에 밥을 담고 반찬을 얹어 간단히 한 끼를 해결하는 노량진의 대표 패스트푸드다. 컵밥 하나의 가격은 2000~2500원. 주머니 가벼운 공시족이나 재수생들의 간편식으로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컵밥 장사가 잘 될수록 인근 식당 매출이 줄었고 이들의 민원에 따라 구청에서 강제철거라는 강수를 택했다. 이번에 철거한 컵밥 노점은 골목길 안쪽의 무허가 점포였다. 큰길가의 구청 허가를 받은 노점은 여전히 컵밥을 팔고 있다.

이들 노점상들은 가급적 인근 식당 메뉴와 겹치지 않는 컵밥 개발에 나선다. 가난한 자들의 슬픔이 담긴 메뉴가 바로 컵밥이다. 컵밥의 인기가 높자 일부 대기업 계열 24시간 편의점에서도 같은 품목을 팔기 시작해 가진 자의 횡포라는 비난도 일고 있다.

▲ 노량진은 1년 365일 내내 각종 시험에 대비하는 학원생들로 불이 꺼지지 않는다. 사진은 한 대입 재수학원의 강의실 모습.
많은 노량진 공시족들이 지방의 집에서 부쳐주는 얼마 안되는 생활비로 한 끼에 3000원이 넘지 않는 고시식당이나 컵밥 등으로 끼니를 때운다.

고시식당의 음식 값은 열 번 먹기로 약정하는 10식은 3만 원, 한 달용 월식은 16만 원, 한 달 동안 하루 두 끼씩 먹는 이식은 14만 원 선이다. 하지만 일부 공시족은 컵밥 2개 가격인 커피를 마시며 휴식 시간을 즐겨 부러움을 사기도 한다. 이를 반영하듯 노량진학원가에도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이 들어선지 오래다.

○서울 한복판 국내외 해산물 총 집결지

▲ 최근 굴 등 일부 수산물에서 식중독을 유발시키는 노로바이러스가 검출됐다는 소식에 지난 15일 오전 서울 동작구 노량진수산시장이 한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사진=뉴시스]
노량진은 서울에서 소비하는 해산물 대부분이 한 자리에 모이는 곳이다.
서울의 한복판에서 요즘 보기 드문 쥐치부터 제주에서 잡힌 참치까지 볼 수 있는 곳은 노량진수산시장이 유일하다. 이뿐만 아니라 꽁꽁 언 채로 사고 팔리는 동태부터 수입 낙지며 명태 등에서 펄펄 뛰는 참돔, 방어, 넙치까지 시장을 가득 채운다. 요즘 한참 제철인 대게, 털게도 수조 안에서 살아 움직인다.

유난히 활어를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맛에 맞춰 진열된 생물(生物) 시장은 외국인 관광객들의 인기코스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큰 갯지렁이와 딱히 구분할 수 없는 개불 등을 그 자리에서 썰어 먹는 모습은 이방인들에게 충격적인 광경이다. 노량진수산시장은 수산물 소비 1위 나라인 일본인들에게도 새로운 풍경이다. 선어를 주로 먹는 일본인들에게 커다란 생선을 산채로 잡아 회를 치는 모습이 낯설기 때문이다.

▲ 노량진수산시장은 서울 한복판에서 가장 싱싱한 활어를 고를 수 있는 곳이다. 소매 점포는 대부분 오래 전부터 찾는 단골손님을 두고 있다. 노량진수산시장은 도매뿐만 아니라 시민들이 해산물을 직접 고른 뒤 2층 양념집에서 바로 맛볼 수 있어 인기가 높다.
시민들에게 노량진수산시장은 저녁 무렵 찾아가 활어점포에서 직접 생선이나 게, 조개류를 골라 회를 쳐 달라 하고 인근 양념집에서 상을 차리는 초대형 횟집이다. 이 시장을 즐겨 찾는 시민들은 대부분 단골 활어점포와 양념집을 알아두고 있다. 주인들과의 면식을 내세워 같은 값이면 더 좋은 생선을 먹기 위해서다. 또 많은 상인들이 단골에게는 푸짐한 서비스 해물을 주는 등 넉넉한 시장인심을 베푼다.

대게나 털게, 킹크랩 등을 고를 때 단골은 더 큰 이점이 있다. 상인들은 아는 손님일수록 살이 더 단단하게 여문 게 등을 권할 수밖에 없다. 살이 없는 대게 등은 단골이 원해도 아예 내주지 않는다.
이런 시장인심 때문에 노량진수산시장을 한 번 찾은 시민들은 기회가 닿을 때마다 같은 집을 다시 가게 된다. 상인과 손님 사이의 ‘Win-Win’ 거래가 활성화되는 순환이 이루어지는 셈이다.

▲ 서울에서 소비하는 수산물의 대부분을 공급하는 노량진수산시장은 전국 각지의 해산물이 집결하는 국내 최대의 시장이다.

 

○새벽을 여는 상인과 저녁 불 밝히는 시민

▲ 노량진수산시장에서 새벽 활어경매를 진행하는 모습.
지난 2008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구로구에서 막회와 과메기 식당을 하는 최영환 씨는 매일 새벽 4시 노량진수산시장을 찾는다. 그는 식당 문을 열 때 소개받은 수산시장 상인에게 그날그날 가장 물이 좋은 생선을 가져와 새벽 6시까지 하루 장사거리의 밑 손질을 끝낸다. 이런 성실성 때문인지 그는 식당을 시작한 뒤부터 지금까지 승승장구하고 있다.

노량진수산시장의 영업시간은 도매와 경매로 나뉜다. 도매는 고급활어의 경우 새벽 3시부터 열리고 고급선어와 대중부류(가격이 높지 않은 중간 품질 어패류 등)는 새벽 1시30분부터, 냉동부류는 세벽 3시부터, 젓갈용 생선 내장 등 폐류는 가장 이른 시간인  새벽 1시부터 장이 열린다. 도매시장은 일요일과 명절 연휴 등에는 문을 열지 않는다.

여중무휴 열리는 도소매는 대부분 점포마다 정해놓은 시간이 다르다. 고급 활어는 대부분 24시간 문을 열지만 나머지 시장은 밤 10시까지 잠시 닫은 뒤 새벽에 다시 연다.

앞서 예로 든 최 씨가 찾는 시간은 도소매 시장이 다시 문을 여는 새벽 3시 이후다. 보통의 시민들은 한참 단 잠에 빠져 있을 시간이다. 최 씨와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 그리고 밤을 새워 동해안과 남해안, 서해안에서 달려온 운전기사들 덕분에 시민들은 느긋하게 싱싱한 해산물을 맛보게 된다.

시장 안에서 회 맛을 보기 위해서는 2층 양념집이 몰려 있는 2층으로 올라가야 한다. 시장 전경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복도를 지나 자신이 알고 있거나 활어점포에서 소개해준 양념집을 찾아간다.

하지만 2층 시설이 워낙 오래돼 쾌적한 분위기는 아니다. 회 맛을 최대한 끌어올려주는 일본식 간장이나 고추냉이(와사비)도 품질이 좋지 않다. 때문에 입맛 까다로운 시민들은 일제 튜브 와사비와 사시미 간장을 따로 지참하기도 한다. 물론 된장을 기본으로 한 한국식 양념장이 더 어울리는 회에는 양념집에서 내주는 막장이 훨씬 더 좋다

○도쿄 츠키지시장 부럽지 않은 수산시장

▲ 지난해 서울시가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사업을 가결, 오는 2016년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될 계획이다.
노량진수산시장은 지난해 12월 시장현대화사업 착공식을 가졌다.
1971년 문을 연 이후 너무 낡은 시설을 개선하기 위해서다. 계획에 따르면 2015년 7월 대지면적 4만450㎡(연면적 11만8346㎡)에 지하 2층, 지상 6층 규모로 변모한다. 또 HACCP기준 시설설비, 저온유통시스템, 악취 환기 시스템, 경매장 내 고온고압세척시스템 등을 갖추고 창고관리에 바코드시스템을 도입해 100% 전자경매체계도 갖출 예정이다.

▲ 노량진수산시장은 부산 자갈치시장 다음 가는 국내 최대의 수산시장으로 일본 도쿄의 츠키지시장과 비교된다.
현재 이 시장은 경매장(7689㎡), 판매장(9088㎡), 사무실(9696㎡), 냉동창고(1만3101㎡), 주차장(1만3087㎡), 폐수처리장(236㎡), 부대시설(1만5486㎡) 등 연면적 6만8383㎡이다. 현대화사업을 마치면 약 5만㎡이 늘어나 지금의 두 배에 가까운 규모가 된다.

국내 어시장의 대표 격인 부산자갈치시장은 현대화를 마무리한 현재 연면적 2만5910㎡로 노량진수산시장보다 훨씬 작다. 노량진수산시장 또한 현대화가 마무리되더라도 연면적 23만㎡에 이르는 세계 최대의 어시장인 일본 도쿄 츠키지 어시장의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 

츠키지시장은 장내와 장외로 나뉜데다 내로라하는 초밥집이며 사시미 전문점, 우동집 등이 밀집해 새벽부터 수백미터의 줄을 선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이러한 관광 명소화는 서울시와 동작구가 그리는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의 밑그림이다.

동작구는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와 함께 여의도와 노량진수산시장을 잇는 보도육교 설치를 계획하고 있다. 그동안 단절됐던 여의도와 노량진 상권을 연결, 역경제 활성화를 노리겠다는 복안에서 추진하는 사업이다.

여의도에서 노량진수산시장을 가기 위해서는 5분 거리의 택시를 타거나 노량진역 앞까지 빙 돌아가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보도육교는 폭 5m, 길이 380m 규모로 자전거 이동이 가능해진다. 또 엘리베이터와 전망대 등을 설치해 한강에 쉽게 접근하도록 만들 계획이다.

○노량진 거리

 

▲ 노량진 거리는 공무원 시험, 자격증 시험 준비생부터 재수생까지 학원을 다니는 인파로 언제나 넘쳐난다.

 

▲ 노량진 식당가의 밥값은 대부분 학원생들이 주 고객층이 까닭에 서울의 다른 지역보다 1000원 정도 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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