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함께 돌자 서울 한 바퀴-(26) 은평구
다함께 돌자 서울 한 바퀴-(26) 은평구
  • 이인우 기자
  • 승인 2013.04.22 10: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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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발마 갈아타고 도성 들어가던 구파발, 지하철만 드나들고…

▲지난해 입하(立夏)를 사흘 앞둔 5월 2일 서울 은평구 경향아파트에서 바라본 북한산과 맑고 푸른 하늘. (사진=이형기 알피니스트 제공)
서울 서북쪽 끝 은평구에도 봄이 왔다. 은평구에 가면 변경의 바람이 불어오는 듯하다. 은평구의 북쪽 끝, 서오릉로 벌고개를 지나면 해묵은 대전차장애물이 아직 남아있다. 고양시 홍보 슬로건이 적힌 대전차장애물은 유사시 지지대를 폭파, 도로 전체를 콘크리트 더미로 막는 구조물이다.

북한이 연일 전쟁 위협을 가하는 4월, 그러나 은평구는 평화롭기만 하다. 80년대까지 전쟁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통일로의 대전차장애물도 그저 낯익은 도로 풍경 중 하나일 뿐이다. 평화로움 속에서도 강남 등에서 은평구를 찾은 사람들은 왠지 낯선 느낌을 받게 된다.

위치로 볼 때 도봉구보다 훨씬 남쪽인데도 이런 까닭은 응암역에서 임진각 아래 통일공원까지 불과 30여km 거리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은평구는 다른 지역의 시민들이 가장 많이 찾는 자치구 중 하나로 꼽힌다.

불광역과 독바위역, 또 지금은 입석버스만 다니는 서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버스로 이동, 북한산을 오르는 산행객들이다. 북한산 둘레길이 만들어지면서 배낭을 지고 은평구를 찾는 시민들은 더 많아졌다.

은평구에서 가장 유명한 상징물은 대형 빌딩이 아닌 자연 그대로의 북한산국립공원이다. 여기다 근린공원이 조성된 이말산, 백련산, 봉산 등도 은평구의 가장 큰 자산이다.

또 조선왕조 당시 한양도성의 서북쪽 교통요충지로서 수많은 일화와 전설을 남긴 곳이다. 은평이라는 지명도 조선이 한성부를 5부(중부·동부·서부·남부·북부)와 53방 행정구역으로 나눈데서 유래한다. 조정은 도성밖 서북부는 ‘연은방’과 ‘상평방’으로 나눴고 이중 한 글자씩 때 은평구로 이름 지었다.

'한참' 걸리는 시간은 말 타고 25리 거리

▲은평구 봉산의 봉수대는 고려 초 설치, 조선 중기까지 운용됐다. 은평구는 2011년 봉산 해맞이공원을 조성하면서 봉수대를 재현해 놓았다.
강남에서 지하철3호선을 타고 종로 쪽으로 나갈 때는 종착역이 구파발이냐, 일산 대화역이냐를 확인한 뒤 타는 게 좋다. 구파발까지 가는 지하철은 상대적으로 승객이 적어 더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구파발은 이런 식으로 서울시민에게 낯익은 동네다. 하지만 구파발의 지명 유래를 아는 시민은 많지 않다.

구파발은 조선시대 한양에서 벽제관으로 가는 길에 있던 파발 마을에서 유래했다. 파발은 1583년(선조 16)부터 실시한 보발(步撥)에서 시작됐다. 날씨에 따라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은 봉수를 보완하기 위한 통신수단이었다. 그러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해인 1592년 이원익 주장에 따라 기발(騎撥·말을 이용한 파발)을 실시했다.

중국 송나라 때부터 시작한 파발은 사람이 직접 달리는 보체(步遞)·급각체(急脚遞)와 말을 타고 달리는 마체(馬遞)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비교적 늦게 시작된 셈이다.

구파발에 있던 파발은 의주에서 한성까지 1050리(약 263㎞)의 직로(直路)에 41참(站)의 기발을 둔 것 중 하나다. 참은 25리 내외마다 하나씩 두고 파발이 경유거나  교대하도록 한 곳이었다. ‘한참 걸린다’는 말은 참에서 참까지 가는 시간에서 나온 말이다.

당시 도로 사정을 감안, 전속력으로 말을 달릴 때 시속 40㎞라고 가정하면 의주에서 한양까지 약 7시간 걸리는 셈이다. 하지만 참에서 교대에 걸리는 시간과 일몰 시간 등을 감안하면 보통 하루는 걸렸을 것이다.

파발을 맡은 발군(撥軍)은 양인정군(良人正軍)인 기보병(騎步兵)으로 편성됐다. 파발의 주요 임무는 관문서 전달이지만, 외국 사신의 내왕에 따른 편의 제공이나 사문서의 전달도 담당했다고 한다. 전송방법은 기밀문서를 문서봉투에 넣어 실봉하고 관인을 찍은 다음 다시 피각대(皮角帶)에 넣어 몸에 지니고 달렸다.

지금 구파발에는 과거 발군과 말이 배치된 참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서울시나 은평구에서 과거 가장 빠른 통신수단이었던 참을 재현해 시민들의 체험교육현장을 만든다면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사모바위 아래 무장공비 조형물

▲북한산 사모바위 아래 V자형 동굴은 1968년 1·21 사태 당시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침투한 북한 124부대가 장비 등을 점검하며 은닉했던 곳으로 서울경찰청이 인형을 만들어 놓았다.
은평구가 북쪽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교통의 요지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한 사건이 있다. 1968년 1월 21일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 소속 124군부대 소속 31명의 무장게릴라들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침투했던 1·21사태다.

당시 게릴라들은 북한산 사모바의 아래 자연동굴에서 무기 등 장비를 점검한 뒤 자하문을 통해 청와대로 향했다. 당시 자하문에서 경찰의 불심검문으로 정체가 탄로나자 경찰들에게 수류탄을 던지고 기관단총을 무차별 난사했다, 또 그곳을 지나던 시내버스에도 수류탄을 던져 많은 시민들이 죽거나 다쳤다.

이후 군과 경찰이 출동, 무장게릴라 31명 중 29명을 사살했고 김신조는 투항, 나머지 1명은 월북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측에서도 최규식 종로경찰서장과 이익수 대령을 포함한 23명이 전사했고 민간인 7명 사망, 부상 52명 등 큰 피해를 입었다.

당시 경찰이 자하문에서 비상 검문에 나선 까닭은 무장게릴라들이 침투과정에서 마주친 파주 법원리의 나무꾼 우철제 씨 등 사형제의 신고 때문이었다. 무장게릴라들은 우씨 형제를 풀어줬고 이들이 경찰에 신고해 서울로 들어오는 길목에 비상경계령이 떨어진 것이다.

은평구 불광역에서 북한산을 오르다 만나는 사모바위 아래는 경찰이 설치해 둔 당시 무장공비 모형이 권총을 겨누고 있다. 지난 1월 21일 새벽에는 사직터널과 광화문 일대에서  수도방위사령부 경비단의 대테러 훈련을 실시했다. 1·21사태가 일어난 지 45년만의 일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해 11월 6일 오후 서울 은평구 창릉천 군사시설을 방문해 군 관계자들과 함께 전투진지를 둘러보고 있다.
최근 남북한 정세는 다른 어느 때보다 경색돼 있다. 과거와 같은 무장게릴라 침투 등의 위협을 줄었지만 북측의 미사일이나 미군의 B-2 폭격기, 핵잠수함, 일본 해상자위대 이지스함 동해 진입 등 군사적 위협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은평구를 종단하는 통일로 주변은 여전히 평화롭다. 통일로는 1994년 일산 신도시 건설에 맞춰 자유로를 완공하기 전까지 평양으로 가는 가장 가까운 길이었다. 남북 정세에 가장 민감한 길이기도 하다.

통일로는 은평구 진관내동을 지나 경기 파주시 문산읍 임진각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었다. 지금도 은평구와 파주시를 나누는 경계에는 유사시 받침대를 폭파,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로 길을 막는 대전차장애물이 그대로 남아있다. 많은 시민들은 그러나 대전차장애물의 용도를 정확히 알지 못하고 당장 북한이 남침할 것이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군사시설 사이 지나는 등산객 물결

▲은평구와 서대문구 사이의 백련산(215m)은 평탄한 길이 이어져 시민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북한산을 조망하기 좋은 중턱에 작은 파고라를 만들어 놓았다.
통일로가 지나는 은평구에는 산도 많고 군사시설도 많다. 가장 큰 산인 북한산을 비롯해 서대문구와 걸쳐있는 백련산, 봉산 등 야트막한 산이 은평구를 둘러싸고 있다. 또 이들 야산마다 지역 예비사단인 56사단이 유사시를 대비해 교통로며 진지를 구축해놓았다.

봉산에는 인근 군 사격장의 유탄 위험 때문에 시민들의 출입을 막는 통제 구간이 있다. 서울 서북 지역 예비군 훈련장이 가깝기 때문이다. 은평구와 고양시의 경계를 이루며 흘러 행주산성 아래에서 한강으로 유입되는 창릉천에는 콘크리트 진지까지 구축해 놓고 있다.

지난해 11월 박원순 서울시장이 군 관계자들과 방문, 은평구 현황을 둘러본 곳이다. 전방과 가깝기 때문에 1990년대까지만 해도 불광터미널은 휴가 나온 군인들로 북적였다. 불광터미널은 현재 서울서부버스터미널로 바뀌었고 시외버스 운행은 중단됐다.

대신 북한산 뒤를 돌아 의정부, 벽제 등으로 향하는 시내버스형 입식버스의 차고지로만 쓰이고 있다. 이 때문에 서부버스터미널은 주말마다 북한산을 찾는 산행객들로 북적인다.

이곳에서 버스로 갈아타는 산행객들은 대부분 고양시 덕양구의 북한산탐방지원센터를 통해 북한산성14문코스로 오르거나 백화사입구에서 내려 의상능선으로 향한다. 굳이 서부버스터미널을 이용하지 않아도 북한산 오르는 길은 무궁무진하다.

▲불광역에서 시작되는 북한산 등산로 중 하나인 족두리봉길을 산행객들이 오르고 있다.
지하철3호선 불광역에서 곧바로 족두리봉으로 올라 탕춘대능선을 따라 가는 길도 있고 6선 독바위역에서 향로봉까지 오른 뒤 비봉을 거쳐 백운대로 향하는 길도 있다. 높이가 낮아도 급한 경사의 바위로 이루어진 향로봉은 북한산에서 가장 많은 추락사고가 벌어지는 곳이다.

또 봉산 아래에서 시작하는 진관사-사모바위길이나 삼천사 입구에서 문수봉으로 가는 길도 있다. 은평구는 북한산의 주봉인 백운대와 인수봉을 가까이 둔 강북구의 반대쪽에서 산을 오르는 거점인 셈이다.

산이 가까운 만큼 얽힌 유래도 많다. 진관내동에서 북한산 둘레길을 걷다보면 내시묘역이 있다. 은평구 방패교육대 앞에서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의 효자동공설묘지까지 3.5㎞인 북한산둘레길 10구간에 있는 묘역이다. 이에 따라 이 길은 내시묘역길이라고 부른다.

내시묘역은 조선시대 임금을 보필하던 내시들이 묻힌 곳이다. 내시는 자손이 없었으나 양자를 들여 대를 잇는 경우가 많았다. 그 자손들이 아직 남아 묘역을 돌보고 있다. 내시묘역은 최근 북한산둘레길을 찾는 시민이 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또 이 길에는 1659년(효종 10) 북한산성 축조 당시 동원된 종사관을 찾아온 기생이 기다림에 지쳐 물에 빠져 죽었다는 여기소 자리가 남아있다. 지금 연못은 없고 작은 표석만 덩그러니 서있다.

정주율 높아 주민 공동체 많은 동네

▲지난해 9월 서울 은평구 녹번동에서 열린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 개소식에 참석한 박원순 서울시장과 내빈들이 현판 제막식을 마친 뒤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서울시 제공)
은평구는 지난해 행정안전부의 ‘2012년 지방자치단체 예산 효율화 우수사례 발표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은평구는 예산운영의 주민참여 분야에서 “구청의 살림살이 주민이 직접 결정해요!”라는 주제로 사례를 발표했다.

주민참여 예산에서 특히 주민총회 참여가 힘든 직장인, 학생 등을 위해 전국 최초로 주민제안사업 모바일투표를 실시한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은평구는 은평뉴타운을 제외하고 대부분 주택가로 이루어진 지역이다. 대단위 아파트단지가 없는 만큼 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주민이 많다.

또 때마침 식품의약품안전처(옛 식약청)가 세종시로 이전한 자리에 서울시마을공동체지원센터가 들어서면서 서울의 마을사업 중심지가 됐다. 은평구 신사2동에서는 두꺼비하우징(대표 이주원)의 마을만들기 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두꺼비하우징은 원주민을 몰아내고 대단위 아파트단지를 세우는 재개발 대신 저층형 주택 개량사업을 펼치는 운동이다. 이를 통해 정감 있는 마을을 되살리고 지역경제도 키우게 된다.

(주)두꺼비하우징은 지난 2010년 (사)나눔과미래, (사)녹색연합, (사)환경정의 등이 공동출자해 설립했다. 이후 2011년 한국주택금융공사, (주)우리은행과의 협약으로 두꺼비하우징론 출시해 주민들에게 저리 융자를 진행 중이다.

또 저소득층 주택의 에너지효율 개선과 집수리 등을 해주는 무상집수리사업 추진해 지금까지 413가구에 혜택을 제공했다. 역촌동 살림의원에 사무국을 둔 살림의료생활협동조합은 주민들이 직접 대안의료 방안을 찾아 나선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개설한 살림의료생활협동조합은 현재 1048명의 주민이 참여, 4억2000여 만원의 출자금을 모았다. 이 조합은 살림의원을 통한 진료만이 아닌 가칭 건강활력센터 등을 개설, 건강한 주민들의 삶을 가꾸는 터전이 될 계획이다.

조합원들은 건강마을위원회, 경영이용위원회 등 소모임에 참여, 조합의 운영에 직접 참여한다. 지금까지 피동적인 의료 수요자 입장에서 스스로 병원을 만들고 이끌어가는 능동적인 입장이 된 셈이다.

은평구는 이밖에 여러 분야의 주민모임이 서울의 다른 자치구에 비해 활발히 전개되는 곳이다. 주민 정주성(定住性)이 그만큼 뚜렷하기 때문이다.

불광천 따라 흐드러진 벚꽃 즐기는 시민

▲은평구 불광동을 기점으로 역촌동·응암동·증산동과 서대문구 북가좌동, 마포구 성산동을 거쳐 홍제천과 합류해 한강으로 합류하는 불광천은 매년 4월 벚꽃축제가 열리는 등 지역 주민들의 대표적인 휴식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은평구에는 주민들이 휴식을 위해 찾을만한 산책로가 많다. 대표적인 길은 봉산과 백련산 산책로다. 신사동 봉산(熢山)은 과거 봉화를 올리던 봉수대가 있던 곳이다. 지금은 봉산공원으로 조성돼 가족단위 나들이에도 좋다.

지하철 6호선 디지털미디어시티역 5번 출입구를 나와 10분 정도 골목길을 걸으면 봉산 숲길 입구다. 숲길로 들어서면 곧 갈림길이다. 왼쪽은 곧바로 능선으로 올라가는 계단길이고, 오른쪽은 완만하게 능선으로 올라갈 수 있어 편하다.

높이 226m의 백련산에는 747년(신라 경덕왕 6년) 진표율사가 창건했다는 백련사가 있다. 당초 정토사(淨土寺)였으나 1399년(정종 1년) 무학대사가 중창하면서 백련사라는 이름을 붙였다. 정종은 태종에게 왕위를 내준 뒤 병을 치료하기 위해 백련사에 머무르기도 했다.

말발굽형인 이 산 능선에 올라서면 은평구 전체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또 멀리 마포구 하늘공원과 상암 월드컵경기장, 상암DMC 등도 시야에 들어온다. 은평구를 가로질러 상암동 쪽으로 흐르는 불광천도 내려다보이는 등 높이에 비해 뛰어난 조망을 자랑한다.

백련산에서 내려다보이는 불광천에서는 12일부터 16일까지 올해 벚꽃축제가 열린다. 불광천은 은평구 대표 휴식처로, 지난 3월 서울 봄꽃길 10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불광동이 기점인 불광천은 역촌동·응암동·증산동과 서대문구 북가좌동, 마포구 성산동을 지나 홍제천과 합류하여 한강으로 흘러들어 간다. 불광천은 특히 비가 와야 물이 흐르는 건천(乾川)으로 한때 쓰레기가 가득했지만, 지난 2002년 오수방지시설을 설치하고 지하수를 끌어올려 자연 하천으로 탈바꿈했다.

또 2010년 컬러 레이저를 이용한 분수대를 설치, 여름밤 화려한 오색 물줄기의 장관을 연출한다. 불광천의 가장 큰 장점은 불광동에서 성산대교 아래까지 이어지는 산책길과 자전거도로다. 긴 겨울이 끝난 요즘 불광천에는 주말마다 산책에 나선 주민들이 둑에 핀 진달래와 벚꽃 사이에서 휴식을 즐긴다.

부동산 불패 신화 깨진 은평뉴타운

▲서울의 뉴타운개발 지역 1호로 건설된 은평뉴타운은 2011년 국제 금융위기 여파로 분양이 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등 서울시의 애물단지가 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해 11월 1일부터 9일까지 은평뉴타운 지역에 임시 시장실을 차리고 미분양 해소에 나섰다. 이후 지난 1월 박 시장은 자신의 트위터에 “은평뉴타운의 서울시 SH공사 미분양아파트 615채 가운데 오늘 현재 521채가 분양 및 전세로 나갔다”고 밝혔다.

곧이어 1월 말 SH공사는 미분양 아파트 모드를 분양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SH공사는 은평뉴타운 미분양 아파트에 대해 일시납 분양, 일시납 잔금유예 등의 방법으로 최대 2억2558만 원을 할인해 선착순 분양했다. 미분양 해소는 뉴타운 아파트를 모두 지은 뒤 4년이나 걸려 가까스로 이룬 성과였다.

은평뉴타운은 서울 강남북 균형발전이 주요 의제로 떠오르기 시작한 2003년,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이 주도한 사업이었다. 이를 통해 향후 진행할 서울 뉴타운사업의 모델을 만들겠다는 의도도 깔려있었다. 당시 서울시는 북한산을 배경으로 하는 자연환경을 살려 명품 주거타운을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세계 금융위기로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은평뉴타운은 애물단지가 되고 말았다. 급기야 서울시 부채 줄이기를 핵심공약으로 내세웠던 박 시장이 직접 미분양 해소를 위해 임시 시장실까지 설치한 것이다. 은평뉴타운은 ‘부동산 불패’ 신화가 어떻게 몰락했는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반면교사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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